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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씨! 제발요

by 이생

갑상선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서울, 경기 지역에 출근길 물 폭탄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기차를 예매했다. 새벽기차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남편은 옆자리에서 어제 못 잔 잠을 청하고 난 어제 읽던 책을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 화분과 프로폴리스를 먹고 갑상선 약을 먹고 아침 식사는 하지 않아서 류마티스 약을 아직 먹지 않아서 그런지 다시 관절이 뻣뻣해졌다.


어린 시절 주말에 보던 <두 얼굴의 사나이>에서 옷을 찢고 근육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내 관절들이 살갗을 뚫고 빠져나올 것 같은 기세였다. 청량리역에 도착해 양재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출근길이라 사람들로 붐볐다.


저마다 휴대폰에 집중하는 모습들. 나는 문득 내 안에 잠재돼 있는 괴물 같은 존재로 변할 것 같은 엉뚱하면서도 슬픈 상상을 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처럼 내 속에 숨겨두고 싶은 하이드가 나를 지배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많은 인파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나만 또 다른 질병으로 도태되어 버리는 것처럼 느껴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픈 몸으로 버텨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쓰는 모습을 보니 이 정도인 것에 어쩌면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검사를 하고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해서 남편과 근처 음식점에 갔다. 10시가 되지 않은 시각이라 일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서 근처 국숫집으로 갔다. 남편은 매운 칼국수와 꼬마김밥을, 나는 야채비빔밥을 주문했는데 남편은 맵지 않은 칼국수가 나오고 나는 계란을 완숙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반숙이 나왔다.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아르바이트생 덕분으로 우리는 소식을 하고 음식점을 나왔다. 이런 착오쯤이야 인생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점을 나오면서 남편은 면이 제대로 익지 않아서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 아쉽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내 몸도 내 맘대로 작동되지 않는데 하물며 누군가가 해주는 음식을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병원에 대기하다 보니 피검사 결과가 나와서 담당 선생님 진료실로 들어갔다. 9년 전 나의 갑상선을 제거해 주신 분이다. 얼마 전 류마티스 진단을 받고 나서 두려운 마음에 연락을 드렸는데 번거롭게 생각지 않으시고 친절하게 위로를 건네셨다.


선생님은 이제 점점 나이가 들수록 병이 더 생기는 법이니 약 조절 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도 이곳저곳이 아프시다며 나를 위로하셨다. 선생님은 의료진의 입장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인생 후배를 격려하듯 다독여주셨다.


수치는 다 정상이라고 하시면서 오래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예언까지 하셨다. 그 말씀을 강력히 믿고 싶은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병원을 나섰다. 나는 오늘 또다시 내 자신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하이드 씨! 제발요. 내 속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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