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심하지는 않지만, 남편이 며칠 전 감기 증세가 있었는데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여서 그런지 금방 옮았다. 목이 조금 칼칼하더니 코감기도 왔다. 병원에 가서 감기 증세를 말하고 약을 탔다. 약을 처방할 때 내가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해 말하면 선생님들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이 사회에서 신체적 약자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나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근육도 많은 그런 멋진 여성이길 바랐는데, 약봉지가 가득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몸에 좋다는 주스도 마시고, 레몬도 매일 한 개씩 먹고, 운동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지나친 운동보다 나에겐 휴식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기 때문이었는지 어젯밤엔 쉽게 잠이 들지 않아서 오늘은 몸이 피곤했다. 더욱이 병가 신청을 해놓은 터라 업무 인수인계 차 학교에 들렀다가 와서 그런지 더 피곤함이 느껴졌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잠깐 누웠는데 잠이 들고 말았다.
천둥소리에 잠이 깨어 창밖을 보니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맑았던 하늘에서 예상치 못한 비가 이렇게 내릴 줄이야. 오늘의 날씨처럼 우리에겐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쉬운 인생은 없다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힘겨움을 겪다 보면 지치게 마련이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결심해도 심리적으로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일어서는 것은 떨어지는 것보다 몇 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디 인생이 편하게 다가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빨래를 다시 세탁기에 넣고 한 번 더 헹굼 버튼을 눌러 놓고 빗물이 빠진 황토에 가서 맨발 걷기를 했다. 빗물로 촉촉해져서 발에 닿는 느낌이 편안하고 좋았다. 벌도 이 느낌이 좋은지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날기를 반복하고 빗줄기가 멈춘 하늘은 아기 미소처럼 맑고 깨끗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니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 편안함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예전에는 내 인생에 다양한 감정들과 복잡한 일들이 밀려드는 것 같아 두려운 생각도 들고 힘들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잡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감정과 행복도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갑자기 복잡한 감정으로 힘겨워질 때도 있지만,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는 명상 음악을 켜두고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숨 고르기를 한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떨고 있는 가엾은 내가 울지도 못한 채 긴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평생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나만 아픈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슬프지만 슬픔에 빠져버리면 소중한 것들을 함께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슬픔에게 그런 기회를 주면 안 된다. 울고 싶을 땐 잠시 울고 다시 털고 일어나야 한다.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힘든 인생에서 행복이라는 네잎클로버를 열심히 찾아야 한다. 그것이 순간일지라도. 행복을 찾은 순간만이 아니라 찾는 시간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힘든 인생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이다.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않으며 지금 숨 쉬는 이 순간, 깊은 호흡으로 열려 있는 나의 감각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감정 상태도 많이 바뀌는 것처럼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세상엔 많은 장르의 인생이 있다. 우리가 어떤 장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도 바뀔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내가 꿈꾸던 장르가 로맨스나 멜로였다면 이젠 코믹이 좋아진다. 배꼽 빠지게 웃으면서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