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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 추억처럼 나에게 찾아오면

by 이생


스테로이드제를 끊은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특별히 통증 때문에 힘들지는 않지만, 손 부기가 스테로이드제를 먹을 때보다 가라앉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 세 개가 밤새 운 것처럼 부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움직이다 보면 서서히 그 부기가 반 정도 가라앉고, 아침 약을 먹은 후, 오후 2시쯤 되면 부기가 좀 더 가라앉는다. 확실히 스테로이드제를 먹을 때 손 부기가 완전히 빠졌다면, 지금은 밤이 되어도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의자에 1시간 이상 앉았다가 일어서면 오른쪽 다리오금 쪽이 뻣뻣해서 스트레칭을 해줘야 한다. 이 불편함 또한 류마티스 진단을 받기 전 불편했던 부분이다.




스테로이드제를 끊고 난 후, 발바닥의 둔탁함과 발가락의 뻣뻣함, 턱관절의 뻐근함 등이 한 번씩 찾아왔다가 떠나갔다. 아마도 스테로이드제 덕분으로 느끼지 못했던 통증들을 추억처럼 나에게 회상시키려는 듯이. 그래도 지속적이지 않게 잠시 왔다가 떠나가는 것이 그나마 감사하다.




설 명절이 지나면서 봉침 대신 도침을 2주 정도 맞았는데, 선생님은 평소와는 다르게 바늘처럼 생긴 침으로 나의 관절과 인대가 유착된 것을 떼어준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 인대와 관절 부위를 지나치게 건드린 탓인지, 아니면 스테로이드제 효과가 떨어져서 그런지 부기가 한동안 더 심했다. 그래서 지난주는 봉침을 맞고 왔다. 아직 손가락에 염증이 남아 있을 때는 스테로이드제 효과가 있는 봉침이 더 나은 것 같다. 물론 손가락 염증이 심해서 인대나 관절이 심하게 유착될 경우, 도침을 통해 좀 더 관절이 더 부드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염증의 근본적인 치료는 도침보다는 봉침이 나에게는 더 맞는 것 같다.




오늘도 mtx를 먹는 날이었다. 부디 손가락이 많이 가라앉기를 바란다. 3일 후면, 류마티스 내과를 방문해서 피검사를 하고 다시 약을 처방받는다. 스테로이드를 끊은 것은 다행인데, 이 약을 먹지 않고도 지난번 검사처럼 모든 수치가 정상적으로 나와야 할텐데 그렇지 못할 경우, 다시 스테로이드제를 처방받을까 봐 걱정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잠시 마음에 일었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조금이라도 내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염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염증에 좋다고 하는 주스를 만드는 것이 떠올라 재료를 구입해 만들었다. 염증에 좋다고 하는 샐러리와 칼슘과 엽산이 풍부한 케일, 그리고 사과와 그린 키위를 넣고 물을 두 컵 정도 부은 후 믹서기를 이용해 갈았다. 샐러리는 향이 강하지만, 사과와 키위 덕분에 상큼한 향이 나서 먹기 좋았다. 케일은 인터넷을 이용해 쌈용으로 나온 것을 구입해서 주스로도 갈아 마시고 식사 때마다 쌈을 싸서 먹기도 한다. 최대한 몸의 회복을 위해 노력을 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모르겠다. 류마티스는 나의 생각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이 근무 중인 선생님 또한 류마티스로 5년째 투병 중이시다. 얼마 전 선생님도 다리 쪽 근육통이 심해지셔서 병원 예약을 잡아 둔 상태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류마티스가 좋아지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한다며 힘든 질병이라고 말씀하셨다. 류마티스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나는 관절 쪽에 영향을 주는 류마티스라면 선생님은 근육을 침범하는 류마티스다. 그래서 밤에 어느 방향으로 누워도 살이 닿는 곳에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신다. 그렇게 매일 밤 숙면을 취하지 못하시면서도 학교에 나오시면 힘든 일은 도맡아 하신다. 심지어 내가 류마티스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약 효과가 나타나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내가 가야 하는 체험활동도 모두 대신 가 주셨다.




아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잡아 두는 일이 더 힘들다. 밤에 문득 깨었을 때 손가락을 구부려본다. 부기로 손가락이 기역자 형태로만 구부러지면 순간 마음이 무너진다. 하지만, 류마티스가 쉽지 않은 병이라는 것을 잘 알고, 다행히 다른 증상들은 다 좋아졌으니 이 정도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어디선가 류마티스 관절염을 관절암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치료되기 어렵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요즘 손의 부기로 지치기도 하지만, 나의 생활 전반이 슬픈 것은 아니다. 그만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의 바닥을 치고 나면, 다른 평범한 일상이 내가 처한 질병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알게 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사소한 일에도 크게 기뻐하게 되고 타인의 실수를 이해하는 힘도 더 커진 듯하다.




어제는 아들 기숙사에 짐을 가져다주고 왔다. 식구가 모두 이틀 전에 가서 학교 근처 숙소에서 묵고 개학과 더불어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했다. 짐을 두고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는데, 차에 내려 올려다본 하늘이 별천지였다. 집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인공조명이 많지 않은 터라 하늘의 별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 북두칠성이며 북극성,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내 마음에도 맑은 별빛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과 함께 별을 잠시 올려다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마음에 다시 환한 빛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심지어 내 손가락 세 개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래서인지 내게 가능한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다. 나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들, 글을 쓸 수 있는 생각과 손가락, 그리고 마음껏 들이쉴 수 있는 공기와 언제든 그 자리에 있어주는 별빛들.




"비관주의자는 '나는 그것을 볼 때 믿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낙관주의자는 '믿을 때 나는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로버트 슐러>




'나는 류마티스가 완치되는 것을 볼 때, 류마티스가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나는 류마티스 관절염이 완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나는 완치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로버트 슐러의 말에 나의 상황을 대입해 보았을 때, 분명 나는 비관주의자보다는 낙관주의자 편에 서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 하늘의 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또한 내가 바라보는 별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슬픈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삶을 더 긍정하게 되고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밤이 지나면, 이제 개학을 앞두고 한 주의 시간이 남게 된다. 지나간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다시 찾아올 봄을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오늘도 한파 경보 알림이 휴대폰에 떴지만, 봄은 어김없이 초록빛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벌써부터 싱그러운 봄 내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올해 봄은 부디 평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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