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열리는 기분이다. 갈라지고 있다. 햇살은 따뜻하고, 땅의 촉감은 부드럽고 푹신하다.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 같은 느낌이 든다. 이틀 전부터 맨발걷기를 시작했다. 햇살이 따뜻한 시간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해가 완전히 지기 전도 괜찮다. 겨울 동안 허락하지 않았던 나의 발을 받아주는 기분이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어떤 일이든 해결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면역억제제와 항류마티스제, 엽산제, 위장보호제, 그리고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는데, 이틀에 반알씩 먹는 스테로이드제인 매치론정을 3일 연속 먹었다. 화요일에 복용하고, 어제는 복용하지 않는 날인데 손가락이 너무 뻣뻣한 느낌이 들어 반알을 먹었다. 예전에는 그냥 큰 통증이 아닐 경우, 하루를 그냥 버텼는데 지난 진료 이후 평소보다 불편함이 느껴지면 복용하라는 의미인 줄 알았기에 어제는 반알을 연이어 먹었다. 오늘을 넘기고 내일 매치론정 반알을 먹으려다가 오늘 아침, 턱관절이 조금 더 뻐근해서 그냥 다른 약들과 함께 메치론정 반알을 복용했다.
다행히 점심이 지나면서 턱관절과 손가락 관절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이 약효는 내일까지 가지 못한다. 약은 딱 하루치의 증상 완화인 듯하다. 약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류마티스 증상이 확연히 달라지면 좋겠는데 류마티스는 좋아질 듯하면서도 제자리걸음일 때가 많다. 지금 먹는 스테로이드제 반 알을 이틀에 한 번 먹고 있지만, 증상이 완화되면 3일에 반알씩 복용해 보려고 한다.
류마티스 질환을 앓고 있는 분 중에 처음 류마티스를 앓았을 때, 염증 수치가 높고, 통증이 심해 스테로이드제를 많은 양 복용하셨는데, 고관절 괴사와 골다공증이라는 후유증이 남았다고 한다. 다행히 수술할 정도는 아니기에 지속적으로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신다. 실제로 질병을 앓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류마티스는 역시 쉽지 않은 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증상과 통증이 심해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해야 하지만, 결국 그 약의 부작용으로 다시 류마티스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나는 희망을 꿈꾼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내 몸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땅처럼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다. 마음이 즐거워지면, 몸도 그것을 금세 눈치채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데 아무 무리 없이 손가락이 편안하다. 비록 손가락 세 개와 중간 관절이 아침에 뻣뻣하고 붓기가 있지만, 이 정도의 불편함 없이 40년 이상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상에 지치고, 힘든 일들이 닥치기도 한다. 그런 힘겨움에 때로는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이 있지만, 그럴 때면 내가 지금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라도 마음 편하게 지내기로 나와 타협한다. 그 길이 결국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내가 무너지지 않는 일이며, 그렇게 내가 잘 설 수 있어야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제대로 돕게 된다는 단순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아프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그것은 육체라는 '나의 집'을 갖고 있는 이상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 이미 갑상선을 제거했기 때문에 갑상선 호르몬제 한 알에 의지해 하루를 살아야 한다. 이 약은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 문제는 류마티스 약인데, 이 많은 약들을 줄여나가다가 언젠가는 내 면역체계의 힘으로도 살아가는 것이 내가 희망하는 삶이다. 그 시간이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면서 어떤 형태를 지닌다는 것은, 그 형태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애써서 만들었다가 다시 조각의 형태로 분리되어 버리는 레고 조각처럼. 나의 형태로 오롯이 존재할 때, 내게 가능한 소중한 일들을 많이 경험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 보이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들려오는 소리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 촉감이 살아있음을 느끼며, 세상을 향해 깨어나는 일. 이런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 같다. 내가 누리는 이 모든 순간이, 결코 그저 평범한 일이 아니며 내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후회하는 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긴 겨울을 지나 결국 봄은 다시 찾아왔고, 세상은 곧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찰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도 꽃 따라 덩달아 피어날 것이다. 그 마음 따라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하루의 끝자락, 오늘 밤하늘에도 늘 같은 빛으로 꽃이 피어난다. 아주 희미한 은빛 안개꽃처럼. 늘 변함없어도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