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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곳에서만 의지도 존재한다

by 이생

어젯밤부터 눈이 내렸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 아침은 세상이 온통 눈 천지였다. 지난겨울은 지나갔고, 올해 겨울이 되어서야 눈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뜻밖의 눈을 보고 나니 눈에 대한 미련의 감정이 밀려왔다. 창가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하얀 명암처럼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도 매치론정 반 알을 다른 류마티스 약들과 함께 먹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턱은 뻐근했고, 손가락 중간 마디 관절이 유달리 뻣뻣했다. 주말에 숯가마에 다녀온 이후로 불편했던 관절이 더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내 몸속 염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손가락이 좀 더 편해지기 전까지 숯가마는 조금 더 보류해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숯가마에 가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9개월 동안 숯가마도 많이 변해 있었다. 9개월이란 시간이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에게 9개월이란 시간도 그리 짧지 않았다. 그동안 몸무게는 4kg 늘었으며, 120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글이라기보다 기록이 낫겠다. 통증과 감정의 기록들. 부디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통증과 감정을 더 이상 기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 기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랜만에 숯가마에 가서 고향 같은 편안함을 느꼈는데, 간혹 시끄러운 소리도 접할 수 있었다. 논쟁은 원적외선에 관련한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참나무를 황토가마에 넣고 불을 지핀 후, 일주일 후면 숯을 꺼내고 그 가마는 다음날이면 꽃탕이 된다. 그 꽃탕의 뜨거운 열기는 그냥 들어가기엔 견딜 수 없는 열기여서 타월을 쓰고 가야 하는데, 한 남성분은 그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라도 빼기 위해서 꽃탕 들어가는 입구를 덮어놓은 천을 걷고 숯가마에 들어가셨다. 그분은 공기가 순환해야 원적외선이 더 잘 방출된다고 하셨고, 더욱이 산소도 중요하기 때문에 막아놓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분만큼 숯가마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열이 식는다면서 싫어하셨고, 그분이 걷어놓은 천을 다시 내리면서 논쟁이 시작되었다. 나는 꽃탕에 들어갔다가 불을 꺼내는 숯 앞에서도 가끔 앉아 있곤 했는데, 불을 쬐는 동안 원적외선에 대한 논쟁은 계속됐다.


때론 자신의 생각으로 너무나 가득 차 있으면,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끔은 내가 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 점검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여러 가지 이야기들 중에 진실인 것은, 참나무가 일주일 동안 가마 안에서 뜨거운 열을 받은 후에 야 숯이 된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숯은 마치 황금처럼 반짝였다. 나뭇결 사이가 불로 가득 차 있어서 불과 나무가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갑상선암 수술 후, 숯가마에서 그 뜨거운 불을 받아들이고 황금처럼 빛나는 숯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에서 나를 짓누르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류마티스 염증이 완전히 몸에서 사라지기 전이어서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숯가마에서 나온 후, 딸이 좋아하는 쌀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기다리다가 높은 천장 아래에 있는 예쁜 풍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서 다른 쪽도 바라보면서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행운을 발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또다시 눈이 내려 오늘은 맨발걷기를 할 수 없겠지만, 나름대로 눈 풍경을 만끽하면서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제 걸을 수 있는 시간들이 더 많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턱관절 운동을 하면서 풍경을 바라보는데 이렇게 관절의 불변함이 있지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지난 한 주는 봄을 만끽하면서 운동장 한 쪽을 걸었는데, 그 발걸음이 모여 길을 만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나의 마음과 맞물려 나의 길이 되고 있었다. 니체는 '삶이 있는 곳에서만 의지도 존재한다.'고 했다. 지금은 내 몸을 세우는데 비록 약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것 또한 내 삶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분명 약의 도움 없이도 내 삶을 세우기에 충분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은 눈이 내리지만, 그 어떤 날보다 온기가 느껴지는 봄날이다. 많은 행복한 일들이 일상으로 스며들고, 그 일들을 놓치지 않고 잘 발견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두어야겠다. 부디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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