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주먹을 쥐어 보니 이상했다. 내 손이 아닌 것 같았다. 주먹은 쉽게 쥐어지지 않았고, 가운뎃손가락도 반밖에 구부러지지 않았다. 학기 초라 시간을 내기 어려워 봉침을 맞지 못했는데, 오늘은 주말이라 봉침을 맞으러 가기로 했다. 어제는 점심과 저녁에 맨발걷기도 하고, 매치론정 반알을 먹지 않았는데도 평소보다 손가락이 자연스러워서 오늘은 더 좋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사실 2주 넘게 손가락 상태가 좋지 못했다. 매치론정을 이틀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먹고 싶었지만, 손가락이 잘 구부러지지 않아서 때로는 이틀 혹은 사흘, 그리고 나흘을 연속으로 먹기도 했다. 스테로이드제는 조심해야 하는 약물이기에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먹어도 될까 하는 고민으로 검진을 받는 류마티스 내과로 전화를 걸어서 여쭤보니, 최소 1주, 최대 2주간 하루 반알씩 매치론정을 먹은 후에는 연속으로 먹지 말고, 이틀에 한 번 정도 먹으라고 하셨다. 그 작은 반알이 참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최소 1주, 최대 2주만 복용하라고 하셨지만, 당분간 규칙적으로 이틀에 한 번씩 복용하면서 한동안 봉침을 이틀에 한 번씩 꾸준히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남은 매치론정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스테로이드제로 그날의 손가락이 유지되는 것은 맞지만, 다음 날 원상 복귀되는 점을 감안할 때, 조금 바쁘더라도 봉침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 같다.
계획은 매번 상황에 따라 변경되게 마련이다.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그날의 상황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이 고단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거의 한 달 만에 봉침을 맞으러 간 한의원에서 선생님은 부은 내 손가락을 보시면서 손가락을 많이 썼냐고 하시면서 가급적 손을 적게 사용하라고 하셨다. 어려운 주문이지만, 실천하기로 했다. 봉침을 맞은 후에 손가락이 엄청 부어올랐다. 정말 헐크가 따로 없었다. 부은 손가락으로 제대로 손을 펴기가 힘들었다. 봉침을 맞고 유독 붓는 곳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시 불편한 곳이 가장 많이 부풀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내 손을 본다면 주먹이 굉장히 큰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맨발 걷기를 하러 마당으로 나갔다. 이제 맨발걷기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찾아오고 말았다. 계절의 변화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비록 헐크 같은 손으로 통증도 있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마음에 찾아오는 우울한 감정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감정을 한 컵 섞었다. 그러니 비록 처한 상황이 불편하고 고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좋고 맨발걷기를 하니 긍정적인 앞날을 상상할 수 있었다. 상상은 실제로 경험한 것 같은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앞날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인간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주어진 삶에 대한 자세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세르게이 영의 책 <역노화>에서 젊고 오래 살기 위해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면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훔쳐다 준 종이 쪼가리에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그 기록들은 먼 훗날, <죽음의 수용소>라는 당시의 기록을 넘어선 삶에 대한 의미를 제시하는 책이 되었다.
프랭클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은 삶의 목적의식을 찾는 것이다.
세르게이 영, <역노화>
노력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실로 축복받은 일이다. 그것에는 희망이 포함되어 있는 긍정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 비록 헐크 손이 되어 이번 주말은 무리한 일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것은 생활 능력을 지속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고, 가족들의 배려다. 손가락도 때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류마티스 진단을 받은 지 9개월이 조금 지나면서 상태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었던 마음들이 어쩌면 손가락을 무리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지 모른다. 아직도 조심하고, 잘 조절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물론 손가락이 조금 더 붓기 시작한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두 달간 매치론정을 끊으면서 상태가 조금씩 안 좋은 쪽으로 흘렀을지도 모르고, 지난번 숯가마의 열기가 붓기와 강직을 더 유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겨우내 맨발걷기를 하지 못함으로써 활성산소가 제대로 제거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며, 나도 모르게 깨어져 버린 음식의 절제가 조금씩 무너졌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처럼 건강하지 못한 장이 원인을 수 있을 것 같다.
화분, 프로폴리스, 꿀, 로열젤리를 구입해서 한 통에 섞었다. 하루에 한 숟갈씩 두 번 복용하고, 봉침을 시간을 내어 자주 맞아야겠다. 맨발걷기도 부지런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가급적 손가락에 무리가 가는 일들을 자제해야겠다. 그래도 이러한 일들은 익숙한 것들이 되어 일상 속에서 지켜내기가 수월하다. 봄이 되면서 나에게도 좋은 컨디션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봄은 내 외부의 상황이며, 나에게 물질적 이익을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또다시 아름다운 계절이 나에게 다가온다. 하늘은 그저 하늘이어서 아름답고, 꽃은 그저 꽃이어서 아름다운 것이다.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맨발걷기를 하며, 나는 땅 위에 길을 내고, 비행기는 하늘에 길을 내고 날아간다. 각자의 위치에서 소중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