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산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오늘도 바람이 너무 세게 불었는데, 속수무책인 불씨와 바람이 원망스러웠다. 화창한 봄을 앞두고,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우리의 삶은 별개의 삶인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자의 행동과 생각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부디 내일은 모든 불씨를 진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토요일에 봉침을 맞은 이후, 손가락 부기는 다행히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은 약간의 열감이 느껴졌다. 오늘 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질병 지각을 신청하고 한의원에 먼저 들렀다.
"오늘은 자락을 좀 할게요."
"네?"
"열감이 느껴지고 부어서 피 좀 빼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자락을 찾아보니, 침으로 정맥을 찔러 나쁜 피를 뽑아내는 것을 말한다고 적혀 있었다.
먼저 침을 맞고, 얼마 후 선생님이 사혈침을 들고 오셨다.
"선생님, 피 좀 많이 빼 주세요."
선생님은 웃으셨다.
다섯 군데 찌르고 손가락을 꾹꾹 누르시는데 너무 시원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해서 안에 염증이 잘 곪은 여드름처럼 터져버려서 내 손가락이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손가락에 집중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너무 신경이 쓰일 때가 있다. 순간 손가락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 회복 속도가 더딜 때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환기하려고 노력한다. 기분 좋은 노래를 듣는다든지, 손가락에 대한 글을 지금처럼 쓰면서 마음을 다짐하든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감정을 흘려보내려고 노력한다.
선생님이 손가락에서 피를 빼는 동안, 누워 있어서 손가락에서 얼마만큼의 피가 흘렀는지 볼 수 없었지만, 선생님은 계속 손을 누르고 피를 닦는 행동을 스무 번 이상 하셨다. 그냥 침만 놓으셔도 될 텐데 조금이라도 회복을 위해 노력해 주시는 게 감사했다. 그리고 냉찜질을 해 주라고 하셨다. 주말 이후, 손가락을 많이 구부리지 말라고 하셔서 설거지와 집 안 청소는 남편에게 맡기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일도 가급적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봉침을 맞은 후부터 오른쪽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 두었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깜빡하고 구부리는 일을 줄이게 되었다. 그리고 밴드를 붙여두니 속상한 내 손가락을 적게 들여다보게 되고, 밴드를 붙여두니 잘 아물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는 이곳도 24도까지 오르면서 정말 겨우내 그리워했던 봄 날씨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미세먼지가 조금 있었지만, 그 정도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당에서 맨발걷기를 하는데, 소방 헬기가 머리 위로 날아갈 때면 어딘가 또 불이 났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소방대원들의 힘겨움과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일상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제자 중에 소방대원인 J에게 시원한 음료 선물을 보냈다. 학생 때부터 수영대회에 나가 줄곧 메달을 타오던 J는 결국 소방서 구조대원이 되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고맙게 찾아오는 J에게 항상 몸조심하라고 메시지를 띄웠다. 그리고 소방대원들이 정말 고생이 많다고, 그런데 내가 아는 소방대원은 너뿐이라 너에게 대신 시원한 음료를 보낸다고 전했다. J는 자신은 별로 힘들지 않다면서 내 건강을 염려했다. 항상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힘들다고 내색하지 못하고 사는 법이니까. 예전에 봤던 <소방관>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불은 소방관들에게도 무서운 존재다. 하지만, 그들의 사명이 그 불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지면, 저 사람은 죽는다.
영화 <소방관>
영화에서 그들은 '사람을 구하면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진정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장구와 혜택이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생각해 본다. 지금 별빛 아래에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부끄러운 나와 달리 쉬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을 잡느라 고생 중인 많은 소방대원들에게 부디 안전하고 행운이 따르기를 기도해 본다.
부디 내일은 불씨도 그만 멈춰주기를, 내 손가락의 부기도 가라앉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