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에 와닿는 바람이 확연히 부드러워졌다. 이제 두터운 코트와 목폴라가 덥게 느껴진다. 꽃을 피우기 위해 벌써 나무들은 꽃봉오리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계속 피고 지는 나무처럼 나는 지속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유한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에 새로 태어나는 새싹을 보면,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스럽다. 겨울을 잘 견뎌낸 생명력이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은 어떤 꽃을 피우려고 하는지 오늘도 볼록하게 부풀어 있다. 아마도 벚꽃이 눈처럼 떨어져 내릴 때, 내 손가락도 어떤 희망이 피어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부질없는 기대는 실망만 안겨줄지 몰라 내 마음을 다독였다가 그런 희망도 꿈꿀 수 없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일 수 있겠구나 싶어 다시 희망을 꿈꾼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물론 늘 즐거운 생각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흐름을 조절하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타인의 생각과 말로 괴로움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타인은 나의 생각까지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형태가 없어 타인이 감히 나의 생각을 추측할 수 없다. 그러기에 과감히 버릴 부분은 버려야 한다. 내가 들여놓고 싶은 부분만 들여놓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사고는 모든 상황을 좋게만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게 닥친 일의 나쁜 면만 보고, 좋은 부분을 간과해 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일. 이것이 긍정적인 삶의 태도인 것이다.
사실 질병을 얻고 살아가면서 아픈 부분에만 집중하느라 나의 건강한 부분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지낸 시간도 많았다. 질병을 얻었다는 슬픔으로 내 지난날을 의미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온 세상이 끝난 것처럼 의미 없이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질병을 얻고 난 후에도 분명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유한한 삶이라면, 그리고 출발점을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도착지점일 뿐이다. 다른 출발점이지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얼마나 가치있게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한 평가가 적절할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한 학생이 자신의 꿈이 PD라고 했다. 멋진 꿈이라고 말해줬다. 그 꿈을 갖게 된 이유를 물어보니,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자신이 의료 쪽으로 진학해서 신체가 불편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분명 그들의 꿈은 타인을 향해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입고 올 정장이 없었냐고 질문하는 어른들보다 존경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지러운 시절이다. 가치 있다고 함께 세운 것들도 흔들린다. 때론 그토록 소중히 여긴 삶을 꽃잎이 지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다. 매년 맞이하는 봄도 눈부시도록 찬란할 것인데,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도 추운 겨울을 지나 분명 꽃이 피는 아름다운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봄이 조금만 더 빨리 와 줬더라면, 이 봄을 함께 만끽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새벽에 일어나면 창을 한 번 열어 봐야겠다. 그리고 가슴이 서늘하도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찬란한 별 앞에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들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들이 찬란한 우주를 수놓고 있는 별빛의 가치만큼 과연 아름다운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