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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낮에 열 번은 웃어야 하고 명랑해져야 한다

by 이생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다고 느낀 하루였다. 아직 드문드문 미처 녹지 못한 눈들이 겨울이라는 시간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때로는 봄을 기다리면서도 겨우내 그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면서 내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순간들로 행복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에는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이 없는 것처럼 겨울이라는 시간이 분명 춥고 힘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나온 시간들이 내겐 너무나 감사했던 시간이라는 것을 겨울을 떠나보내는 이 길목에서 다시 생각한다.




봄이 오기 전, 다시 한번 마지막 눈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따뜻한 날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어쩌면 이미 겨울의 눈은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것들은 늘 미리 끝을 알려주는 법이 없다. 며칠 전, 그림처럼 눈이 내리던 그날, 눈을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그날의 풍경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사진으로 찍지 못할 그 눈 오던 날의 내 마음도 같이 간직될 것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내 모습과 내 마음을 10년, 아니 20년, 30년이 지나도록 꺼내봐야겠다. 마음으로 간직된 사진은 늘 빛바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마당에 나가 남편은 남아 있는 데크의 눈을 치우고, 딸은 눈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귀여운 발자국과 웃는 표정을 손가락을 이용해 그렸다. 학창 시절 김 서린 창문에 그렸던 발자국을 딸이 눈 위에 그렸다. 세상의 일상이 돌고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웃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유산처럼 느껴졌다.











내 손가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듯하다가 잠시 가벼워지기도 해서 내 마음을 간혹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속에서 균형 잡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내가 지지 않고 내 삶을 지켜내는 의지를 더 강하게 갖게 된다는 것이다. 아직 오른쪽 다리오금 쪽이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뻐근하지만, 실내 자전거를 타고 스트레칭도 했다. 지난 진료 때, 선생님은 이 증상은 류마티스로 인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것이 류마티스로 인한 증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류마티스 증상은 가끔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환자 각자만의 통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부분에 집중해서 치료하는 것이 때로는 무의미한 것이 류마티스는 자가면역이라는 몸 전체의 문제이지 부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의 문제가 해결되면 부분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는 기분이 든다.




류마티스 진단을 받을 무렵,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가정용 파라핀 치료기를 샀는데, 염증이 심할 때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해서 보관만 하고 있다가 오늘 다시 시도를 했다. 촛농 약물 치료로 급식 조리사님들처럼 손가락을 많이 쓰시는 분들이 사용하기도 한다. 촛물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빼기를 다섯 번 반복하고 촛농이 다 굳으면 떼어냈다. 오늘 두 번 정도 했더니 손가락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손가락이 더 붓는 느낌이 들지 않아 자주 사용해 봐야겠다.




따사로운 햇살 때문인지 산책을 하고 난 후, 집으로 들어와 정말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니체는 잔다는 것은 간단한 기술이 아니며, 잠자기 위해서는 온종일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규칙을 어겼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낀 편안함이 좋았다. 그 여유로움이 감사했다.




"그대는 낮에 열 번은 웃어야 하고 명랑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고난의 아버지인 그대의 위장이 그대를 밤중에 괴롭힐 것이다. (중략) 나는 큰 명예도 많은 재물도 원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비장에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당한 명성과 약간의 재물이 없다면 잠을 이루기도 어렵다."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니체>



니체는 도둑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도둑을 '잠'이라고 표현했다.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우리의 생각을 훔쳐 가면 우리는 이내 잠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잠이라는 것은, 이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매일 사용하는 명상 앱에 그날의 감정을 기록하는 부분이 생겼다. 벌써 명상을 시작한 지, 795일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아직 많이 부족한 나이지만,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요즘은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기 전에 깊은 명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로지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갖다 보면, 나만큼 타인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이 나에겐 행복으로 다가온다.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는 니체의 말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던 틀을 깨뜨려야 나를 살릴 수 있는 신선한 공기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순풍 같은 마음이 내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함께 따뜻하게 살아가는 일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사랑스러운 도둑을 만나볼 시간이 다가왔다. 하루 동안 떠올렸던 생각들과 복잡한 마음들, 그리고 부기가 있는 내 손가락을 가만히 내려놓고 잠을 청해봐야겠다. 때로는 세상일이 복잡하고 어수선한 듯하지만, 분명 우리에게는 따뜻한 봄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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