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 여행오면 매일 일기를 쓰기로 다짐했는데 어제 일기를 못썼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오늘은 작고 많은 일들을 했다.
1. 헬싱키에 온 지 7일 만에 헬싱키 대성당에 갔다. 헬싱키 대성당은 핀란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시내 중앙에 있기 때문에 학교 다니면서 항상 지나쳐갔던 곳인데 관광객으로 오니 마음먹고 찾아가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는 게 조금 슬펐다. 오랜만에 보니 더 웅장해 보였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서는 저 건축물이 무너져서 깔려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지인 혬과 관광객 모드로 사진을 찍었다.
2. 핀란드에는 도서관이 많다. 그중에서 나의 최애는 오늘부로 핀란드 국립 도서관이다. 현지인으로 살며 왜 이 도서관에 와보지 않았을까? 나와 함께 교환학생을 했지만 그곳에 가보지 않은 다른 친구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해리포터에 나올 법한 모습이었고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내일은 거기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3. 오늘 아침부터 휴대폰 인터넷이 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좀 짜증스러웠다. 10유로를 추가로 충전했는데도 먹통이었다. 길을 걷던 중 내가 사용하는 통신사 간판을 보고 들어가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내가 작년에 쓰던 핀란드 번호로 요금이 충전돼서 그렇다고 했다. 그럼 여태까지는 어떻게 인터넷이 되었던 건지, 내가 또 돈을 내야만 하는 건지, 잔여 요금을 옮길 수는 없는 건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짜증스러운 상황을 더 만들고 싶지 않아서 7유로를 더 내고 무제한 인터넷 요금제를 구매했다.
혬과 돌아오는 길에 낭비한 17유로가 너무 아까운데 그 돈으로 뭘 했다고 쳐야 기분이 나아질지에 대해 얘기했다. 혬은 방금 인터넷 문제를 해결해 준 상담원이 아주 친절하지 않았냐며 인건비가 비싼 핀란드에서 공짜로 상담을 받고 문제도 해결했으니 17유로는 그곳에 투자한 셈 치자고 했다. 내 기분을 되돌리기에 적당한 이유였고 복권을 샀을 때나 느낄 수 있을 법한 묘한 기쁨이 느껴졌다.
4. 아누와 벤야민을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그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중앙역 서점에 갔다. 나는 핀란드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밥을 먹으며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 Finnish nightmare시리즈 중 핀란드 관용어에 대한 그림책을 구매했다.
아누와 벤야민은 한국을 사랑하는 핀란드 친구들이다. 특히 아누는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적도 있고 한국어를 수준급으로 구사한다. 벤야민도 헬싱키대학교 한국어학과 학생인데 작년까지는 짧은 대화만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만남부터 헤어질 때까지 거의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었다. 벤야민을 보며 나도 핀란드어 배울 걸, 하는 후회를 잠시 했다.
그림책을 보면서 핀란드의 관용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누가 한 관용어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핀란드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 도움이 안되는 사람을 ‘순록의 엄지손가락’이라고 한다고 했다. 순록의 엄지손가락은 쓸모가 없으니까...사람들이 참 나쁘다고 말하며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한 나라의 환경과 문화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감탄스러웠다.
아누와 벤야민은 여름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다. 헤어지기 전, 잠깐동안 추억팔이를 하며 작년에 아누 집에서 먹었던 벤야민 표 블루베리 파이가 한국에 가서도 자꾸 생각났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만들어달라고 하니 오븐이 필요하다며 내가 오븐을 구해주면 매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딜을 하고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했다.
그들이 겪은 한국의 매력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서로의 나라에서 행복한 기억을 지닌 사람들이 몇 년에 걸쳐 서로의 나라를 오가며 꾸준히 소통한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뿌듯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나에게 핀란드일까. 확실히, 나에게 핀란드는 이역만리에서 향수를 일으키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