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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Feb 02. 2022

인스턴트커피를 찾게 되는 나이



스물다섯. 갓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의아했던 점이 있었다. 개발팀 책임님들이 수시로 인스턴트커피를 타 드시고 틈만 나면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돈 아끼려고 그러나 아니면 커피 사러 가기 귀찮아서 그러나 싶었다. 사무실을 나서면 사방에 커피 전문점이고 심지어 사내 카페도 있는데 저 맛없고 몸에 안 좋은 걸 왜 저렇게 자주 많이 마시는 걸까 궁금했다. (여담이지만 인스턴트커피 냄새에 담배냄새까지 더해지면 최악이다. 코로나 이전이라 마스크도 쓰지 않던 시대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또 커피 없이 못 살 정도는 아니다. 회사 생활할 때는 점심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오며 습관적으로 커피를 한 잔 사서 들어왔고 공부하거나 일할 때도 커피를 마시면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아 별생각 없이 마시곤 했다. 메뉴는 십중팔구는 아메리카노다. 가끔 달달한 게 당기면 바닐라라떼나 모카, 특정 프랜차이즈에서는 모로칸민트라떼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기본은 아메리카노다. 특히 디저트와 함께 마실 때는 무조건이다.


임신을 하면서 처음으로 커피를 끊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당시 살던 집 바로 옆 건물 1층에 카페가 있었고 오후 4시만 되면 커피콩을 볶는데 그 향이 끝내줬다. 그때 알았다. 나는 커피를 맛보다는 향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임신하고 수유하면서 커피를 못 마시는 게 대단히 큰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가끔 커피가 당기면 디카페인으로 마시기도 하고 커피 향 나는 곡물차를 마시기도 했다. 집에서 캡슐 커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커피 향도 너무 좋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어느 정도는 충족이 된다.


인스턴트커피(a.k.a 다방커피) 믹스 아예 집에 사다 두질 않을 만큼  인스턴트커피커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입맛에 너무 달기도 하고 '인스턴트'라는 말에서  거부감이 들기도 해서다. 그런데도 인스턴트커피가 필요할 때가 있다.  바로 여름에 O 커피믹스를 아이스로  마실 때다. 이상하게 여름에는 더위를 먹어 기운이 없어서 그런지 달달하고 시원한  당긴다. 그래서 유일하게 여름철에 인스턴트커피믹스를   정도 사두곤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여름이 아닌데도) 이 인스턴트커피가 당겼다. 아이 입원 준비를 하며 짐을 챙기는데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한 번 들어가면 외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먹거리도 이것저것 챙겼다. 커피를 사러 나갈 수도 없을 테니 아쉬운 대로 카O라도 챙기자 하는 마음으로 시댁에서 찬장을 열었는데 맥O 커피믹스가 보여 몇 개 챙겼다.


병원에서 아이와 하루 종일 지내며 간호하고 돌보느라 많이 피곤한 상태였다. 저녁밥을 먹고 인스턴트커피를 종이컵에 한 잔 타서 에이스와 함께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따뜻하면서 달달한 커피에 스트레스가 풀리고 부드러운 에이스에 긴장도 풀리는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방커피 다방커피 하는구나 싶었다.


10년 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던 책임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인스턴트커피를 타 드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내 나이가 그 당시 책임님들 나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인스턴트커피가 좋아지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삼십 대 중반, 인스턴트커피가 좋아지는 나이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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