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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Jun 10. 2023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아…네 저흰 중학교 동창입니다.”

아내를 소개하는 이 한마디에 참으로 다양한 반응들이 있다


“첫사랑과 결혼? 오… 은근히 순수해.”

“중학교 동창이면 동갑? 너무 능력 없는 거 아냐?“


‘그래 서태지처럼 아내와 16살 차이는 나야 능력자지…‘

동갑이랑 살면 좋다, 나쁘다, 어떻다, 밀린다... 의견이 팽팽히 갈린다.


사실 중학교 때는 아내를 잘 몰랐다.  

같은 중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한 반에 60명씩의 반이 한 학년에 17개나 있었던 그 학교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 기회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난 건너 건너 그녀의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알았다. 2학년 때 우리 반 아이 하나가 졸업할 때까지 고백 한번 못하고 조용히 짝사랑했던 아이로만 기억한다.


그런 그녀와 중학교 졸업 후 우연히 노량진의 한 학원에서 만나, 가끔 안부를 물으며 썸을 타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군입대 직전에 연애를 시작하고, 7년 연애 끝에 흔한 프러포즈도 없이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했다. 당시 결혼의 물리적인 순서로 따지면 아내는 친한 친구 중 3등, 나는 거의 1등으로 빨랐다. 살면서 1등 한 적이 별로 없어서 이 또한 의미를 담아둔다.


연애할 때 백수였던 아내는 결혼 앞두고 임용고시에 척 붙어 선생님이 되었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내가 전략적으로 공무원 연금을 노리고 선생님인 아내를 꼬셨다고도 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주도 면밀하지 못하다. 그저 작고 유쾌한 그녀의 스타일이 편하고 좋았다.


그렇게 쓰윽 결혼하고, 우리는 연애기간 포함 무려 30년이 넘게 커플로, 가족으로, 친구로 함께하고 있다. 소위 사람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첫사랑은 깨진다.', '긴 연애는 설렘이 없다.', '동갑 결혼은 남자가 한 눈 팔기 좋다.' 등의 통념과는 달리 이렇다 할 풍파가 없이 견고히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아내가 여전히 참 좋다.

아니 어쩌면 30년 전 그 시절 보다 오늘의 아내가 더 좋다.

어떻게 철없던 시절 첫사랑과 결혼하고 그에 더해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변치 않는 호감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공무원 연금이 인내심을 다독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서두에 밝혔지만 나는 백수인 그녀와 시작했다. 물론 교사인 그녀도 굳이 마다할 리 없었지만.


난 사실 좋은 결혼 생활을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한 것이 거의 없다.

우리의 시간, 그녀의 시간을 복기해보면, 사실 그녀의 공이 컸다.  


우선 그녀는 좋은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남의 얘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도 현지 가이드 얘기를 듣고, 박물관에서 도슨트 설명을 듣고, 이런 거에 푹 빠진다. 그 드물다는 남의 얘기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리액션이 참 좋다. 정말 잘 웃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운다. 소소한 일에 쉽게 감탄을 한다. 가끔 '아니 이 대목에서 운다고...' 할 정도로 금방 울고 또 금방 웃는다.


무엇보다 그녀는 편견이 거의 없다. 아내가 교사로 있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형편이 많이 어려운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때때로 과격한 돌출 행동을 하게 되면, 아내는 아이들의 배경을 보지 않고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대한다. 비단 교실 속 아이들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흔히 있을만한 선입견이나 험담을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녀는 타인에 시선에 매우 둔하다. 3보 이상 차로 이동하는 유난히 차를 타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차는 그야말로 이동 수단으로써의 '탈 것'이다. 중고차로 구입 후, 거의 세차한 적이 없다. 조수석은 우유를 제대로 한번 쏟았는지 시트 통풍구에 허연 석회가 보이고 앉기가 좀 거시기하다. 범퍼와 휠 주변도 긁히고, 까지고, 적잖이 찌그러져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차에서 이런저런 소리도 많이 난다. 겨울에 시동을 걸면 굉음에 가까운 소리가 난다. 핸드폰도 한번 사면 한 5년 넘게 쓴다. 검소하다기보다는 목적에 부합하면 개의치 않는 듯하다. 차는 굴러가고, 전화기는 통화되고...     


그녀는 나보다 훨씬 손이 크다.

김밥도 한 번에 스무 줄씩 싸서 먹고 주변에 나눠주고. 조카들, 어르신들 용돈이나 선물도 내가 생각하는 합리적인(?) 수준의 두세 배를 준다. 처음에는 이게 좀 과하다 싶었는데,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결국 이게 다 돌아 돌아 뭐로든 돌아온다. 조카 중에 한놈은 군대에서 받은 월급으로 선물을 사 오고, 어르신들도 뭘 계속 보내주신다.    


그리고 그녀는 엄청나게 잠이 많다. 초 저녁잠, 낮잠 등이 많다 보니 나의 퇴근시간과 나의 사회적 사생활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때론 서운할 정도로 방목을 해주신다. ^^

스무여덟 살 그날,
예식장에선 난 그녀를 정말 하나도 몰랐다.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얼굴, 키, 옷맵시, 목소리와 연애시절 보여준 선택적인 모습이 전부였다. 결혼 직후 그녀의 외모와 선택적으로 내게 보여주었던 모습들은 거짓말처럼 바로 사라졌다. 사실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게 소위 결혼을 소재로 한 다큐 등에서 말하는  중추신경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나오는 도파민 분비, 즉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정상화 수순일 수도 있겠다.    


오히려 결혼 전에 비중 있게 인지하지 못했던 다양한 상황에서의 그녀의 언어와 리액션, 누군가와 심각한 통화를 하며 간접적으로 느껴진 편견 없는 생각, 똥차와 똥폰을 당당히 쓰며 남의 이목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자존감, 내 월급으로 감당 못할 참으로 이타적인 큰 손 등이 내 아내의 본모습이었다.


결혼 전 10년은 결혼 후 1년과 그 시간의 밀도의 차원이 다르다.

아무것도 가릴 수가 없다. 그저 그 사람의 본모습대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결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하게 된다. 내 경우는 매우 그러했다.

끊임없이 아내의 본모습을 알아가고, 여전히 또 알아가고 있다. 결혼은 인생 최대의 벤처사업이다.


"어떤 수를 다해서라도 결혼하라.
좋은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쁜 아내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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