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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날드곽 Sep 10. 2023

인생은 결국 방까이

미스터 신을 위한 '운'에 대한 오마주  

반까이, 방까이 요즘도 이따금씩 쓰는 단어다.


어감처럼 일본어고, 뜻은 우리말로 ‘만회’다.


못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우리가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빨리 우리 곁을 떠날 때면 삶은 쉽게 만회가 되지 않고, 참 불공평하고 운은 그야말로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드라마 환혼의 명대사 “악은 거침없이 갈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가?”처럼


자연의 눈으로 보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미물이다. 그저 억겁의 시간 속에 잠시 피고 지는 꽃 같은 찰나들. 멀리 보면 더 화려한 꽃도 피지 못한 꽃도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자연은 관점에서,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한 사람이 인생은 그 자체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여러 형색의 꽃들은 비, 바람, 땅의 기운을 만나며 제 각각 다른 속도로 피고 지는 각기 다른 운을 맞이한다.


이전 회사 입사 동기중 나보다 세 살이 많은 형이 있다. 입사 때부터 주위를 밝게 하는 늘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독보적인 ‘자린고비’ 캐릭터가 명확했던 그 형.


근무시간 내 집요하게 사전 작업을 하여 누군가에게 치맥을 사게 하고, 술자리를 마치며, 치맥값은 물론이고 차비까지 달라고 하는 참으로 기막힌 넉살의 그 형. “오늘 한잔 사라.” “차비는 안 주니?” 알고도 당하는 그의 기술은 알고도 유쾌히 당하게 된다.


이 형이 ‘자린고비’ 캐릭터로 해학적으로 회자되는 것에 비해, 나름의 관운으로 대기업을 옮겨가며 임원 생활도 하고 있고, 여러모로 괜찮은 ’ 운‘을 여전히 누리고 있다.


가까이서 보면, 남들보다 앞서가는 인생은 아니었다. 항상 동기들 중 늦게 진급하고, 뭔가 작은 자리라도 맡으면 얼마 못 가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 조직이 아예 없어지고, 특유의 자린고비 캐릭터가 회자되고 살이 붙어며, 직급이 높아져도 다소 싱거울 수 있는 이미지로 일관했었다.


이 형의 가볍게 볼 수 없는 부분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우선 사람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다. 정직원들이 아닌 구두 수선 아저씨나, 문서 수발실에서 지원업무를 하는 파견 직원까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따뜻하게 대해준다. 그리고 회사 동료들의 애경사를 정말 누구보다 정성껏 챙긴다. 이미 이직한 사람이나, 조금 애매한 관계의 사람이나, 장소가 먼 지방에 내려가는 상황이 생겨도 예외 없이 진심으로 신경을 써준다. 집에서는 치매를 앓게 되신 처가 어르신들을 정말 오랜 기간 한 집에서 모시고 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소위 그 동년배들 중 눈에 띄는 사람들은 해외 주재원으로도 나가고, 한 자리씩을 하며 움직일 때 이 형은 참으로 느리고 변함없이 늘 있던 자리를 나름의 해학과 캐릭터로 지켰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늘 한결같던 이 형은 이 사람 저 사람 다 떠난 어느 날, 느지막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고, 그 프로젝트를 기대 이상으로 해내며, 그 단 한 번의 공적을 살려 임원을 단다. 임원을 달고도 그 소박한 자린고비 캐릭터는 변치 않았고, 어르신들에 대한 간병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탈함도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정성껏 모시던 그의 장인 어르신이 떠나시던 날, 부의를 알리러 내게 전화를 걸었던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정말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정말 슬픔의 크기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목놓아 울었다. ’ 내가 내 장인의 부고를 알리며 이렇게까지 울 수 있을까? 그것도 수년간 중증 치매로 모시던 어르신을…‘


‘운’은 예측할 수 없는 기운이다.
그럼에도 만회의 기회는 있는 것일까?


’ 운‘은 A가 B를 지나 C를 거쳐 D를 넘어 E로 오는 그저 알 수 없는 우연일까?


어쩌면 운은 우리의 생각보다는 더 덕을 쌓음으로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운은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하는 회귀 본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늘 덕을 쌓아도 수년 수십 년을 돌아 덕을 쌓은 기억도 가물 가물해졌을 때 온다는 것, 혹은 그다음 대에 오기까지 하고, 받을 사람이 그 자리에 없으면 다른 곳으로 미련 없이 가버리는 것 일 수는 있겠다.


요즘은 그 늘 싱겁게 보이던 자린고비 형의 뒷모습에서 설명키 어려운 무게가 느껴진다. 결코 작지 않고, 결코 가볍지 않다. 묵묵히 지내온 그의 변함없는 시간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기쁜 순간 누구보다 기뻐해 주고, 슬플 때 곁을 빌려주고, 목숨을 걸고 효를 다하는 착한 사람. 비단 그가 여전히 대기업 임원으로 건재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 지난 시간을 반까이함이 마땅하다.


인생은 결국 반까이. 다만 그 시점을 우리가 알 수 없을 뿐.


#운 #반까이 #방까이 #자린고비 #형 # 임원 #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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