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전야에 찾아온 아기 고양이
2019년 9월, 출근하는데 하늘의 색이 심상치 않았다. 이 정도면 조만간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겠다 싶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점심시간이 이후에 비가 오길 기도했다.
전쟁 같은 오전 업무를 마치고, 미처 보내지 못했던 이메일의 발송 버튼을 눌렀다.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확인하니, 다행히 출근길의 기도가 통했는지 아직 비는 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언제 쏟아질지 몰라 우산을 챙겨 들고 먼저 식사를 하러 나간 동료 직원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저는 볶음밥이요."
동료에게 전화로 대충 메뉴를 주문하고 습관처럼 핸드폰의 사진첩을 열었다. 엄마가 오전에 보내준 랑이의 사진이 가장 먼저 보였다. 구조 당시 5개월령이었던 랑이는 2.5kg의 작은 고양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5kg의 성묘로 제법 아저씨(?) 같아졌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때였다.
필로티식 빌라의 주차장 안쪽 깊은 곳에서 아기 고양이가 삐약삐약 하고 우는 소리가 났다. 바쁘게 움직이던 두 다리를 멈추고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맞다. 다시 들어도 아기 고양이가 우는 소리였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저 멀리서 작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나를 빤히 보며 울고 있었다.
"엄마는 어디 가고 너 혼자 그러고 있어."
살갑게 말을 걸며 아기 고양이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그냥 너무 작고 귀여워서. 잠깐 말을 걸고 식사를 하러 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아기 고양이의 모습은 참담했다. 나를 보고 깜짝 놀라 화단으로 도망가는데, 앞다리와 오른쪽 뒷다리만 퍼덕이고 있었다. 랑이를 구조했을 때처럼 왼쪽 다리는 끌고 있었다. 그래도 어미가 잘 돌봤는지 눈과 귀는 깨끗해 보였다. 짧은 순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두고 갈까? 랑이를 구조하고 수술비만 100이 넘게 들었어. 이번에도 그만큼 들겠지? 하지만 두고 가면 죽을 거야. 비도 온댔는데. 그냥 비도 아냐. 주말부터는 태풍이 온댔잖아.'
머릿속으로는 고민을 하면서 내 손은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가장 가까운 내 편이 구조하라고 허락해주길 은연중에 바랐던 것 같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남편은 고민 없이 바로 구조하는 게 좋겠다고 답변했다. 그와 통화를 끊고, 회사 동료 중 고양이를 키우는 영광 님에게 전화해 박스를 하나 챙겨다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몇 분 후 영광 님이 커다란 박스 하나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리고 내가 잡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아기 고양이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잡아채 박스에 넣었다. 우리가 소란스럽게 있자 빌라 반대편에 있던 슈퍼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말했다.
"에구, 그렇게 데려가 버리면 어미 고양이가 찾을 텐데."
"알아요. 하지만 이 아이 다리를 못 쓰는 걸요. 그냥 두면 죽을 거예요."
나는 아기 고양이가 든 상자를 차 뒷좌석에 실어 두고 중국집으로 향했다. 이미 다 식은 볶음밥을 대충 먹는 성의만 보이고 급하게 나서는 찰나 혜주 님이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뛰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걷는 것도 아닌 종종걸음으로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니 거짓말처람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네가 살려고 나를 불러 세웠구나.'
두근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랑이를 수술해 주셨던 역 앞 작은 동물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