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해피한 곳이면 어른들도 해피한 2곳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아내를 따라 결말이 예상되는(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육아휴직을 내고 1년간 포틀랜드로 애들하고 다 같이 작년에 여기에 왔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게 3월 중순부터 올스톱이었었다. 다행히 6월 초부터 가게들이 조금씩 열기 시작했고, 우리도 먼지가 쌓인 지갑을 다시 열었다(아 집밥 먹느라 제법 썼구나...). 지갑을 열어야 할 대상 중 하나가 와이너리였다. 집-공원-마트의 무한반복도 끊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가능한 곳으로는 적격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전에 가봤던 포틀랜드 근교의 와이너리에서 즐거운 경험한 나로서는 새로운 와이너리를 찾는 것은 도돌이표 공원이나 마트보다 나았다.
두 와이너리를 찾아갈 때 난 아이들과 가기 좋은 와이너리를 우선적으로 찾았다. 아이들이 어른들이 와인을 마시는 동안 자기들끼리 놀 수 있는 곳이 아이들한테도 좋고 (사실 진짜 목적은) 어른들한테도 좋으니. 지금까지 두 곳을 가봤다. 첫 번째는 코로나19 터지기 전, 두 번째는 코로나19 터진 후에 가 본 와이너리이다.
#1 Stoller Family Estate
코로나19가 미국에 터지기 전 아내가 포틀랜드에 와서 와이너리를 가보자고 했었다. 사실 아이들이 어려서 와인을 마시면서 애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난 처음에는 뜻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다 주말에 하루를 시간 때우기 위해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로 했다. 방문하기 전에 나는 (1) 집에서 너무 떨어지지 않은 곳(1시간 정도 거리로 - 멀면 돌아올 때 힘드니까)과 (2) (스스로 반신반의했지만) 키즈프랜들리한 조건으로 와이너리를 찾아봤다. 와인 맛은 조건 3순위였다. 어차피 애들을 지켜봐야 하니 와인을 즐길 거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터넷에는 10개 이상 와이너리들이 키즈프랜들리 하다고 선전하고 있었고 각각 왜 어린이들이 좋아할 것인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번뜩 들어왔다.
Stoller Family Estate 와이너리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약 45분 거리에 있는 와이너리이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타이어 그네가 있다고 한 점이 매력적이었다. 난 리뷰를 읽으면서 애들이 그네에서 30분은 잘 놀겠지 하고 예약을 했다. 아내한테는 테이스팅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인당 20불에 5잔 제공), 와인도 괜찮다고(사실은 나도 잘 모르지만) 말하고 여기로 갔다.
와이너리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면서 보니 나무 한그루에 타이어 하나만 달랑 걸려있었다... "뭐여..." 역시 "미국은 별거 아닌 것도 잘 포장해서 잘 부풀리는구나"하고 급실망을 했지만 내색을 하진 않고 테이스팅룸으로 향했다. 테이스팅룸에서 첫 번째 와인을 받을 때 두 번째 실망. "아니, 요 정도만 주다니... 좀 더 부어주지..." 하지만 같이 온 한국인 가족 앞에서 내가 추천한 곳이 별로였다는 것을 내색하기가 그래서 일단은 야외에 자리를 잡으로 나갔다.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망#1, 실망#2를 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탁 트인 잔디밭, 그리고 나무 앞에 모여 있는 행복한 다른 어린이들. 내 아이들은 바로 나무로 직행. 난 바로 의자로 직행. 그리고 한 모금 마셨다. "오기 잘했다..." 아이들은 그날 3시간을 타이어 그네 타기와 잔디밭에서 뒹굴었다. 난 애들한테는 전혀 신경 안 쓰고 나머지 와인을 잘 마셨다. 사실 와인맛은 그리 기억에 나지 않는 것 보면 그저 그랬던 것 같다.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난 어른들과 어른들의 대화를 하면서 평온한 반나절을 보냈으니 임무 달성.
#2 Brooks Wine
두 번째 와이너리는 조건 1(1시간 내 거리), 조건 2(키즈 프랜들리)에 더해서 조건 3을 충족해야 했다. 조건 3은 와인도 괜찮어야 된다는 것. 다시 키즈프랜들리 와인너리를 검색해보고 충족된 곳을 발견했다. 그리고 날씨도 좋고 애들이 있으니 야외 피크닉 테이블로 예약을 했다. 테이스팅 비용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살짝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닭 모이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와이너리의 장점이라고 해서 일단 가보기로 결정을 했다.
Brooks Wine은 1시간 정도 걸렸다. 도착하니 마스크를 쓴 직원이 우리를 아담한 꽃길을 통해서 채소밭을 지나서 야외 피크닉 테이블로 안내를 했다. 이미 백인 여자분들 일행이 한 테이블에서 몇 병을 드시고 있었다. 그 외 자리들은 비어 있어서 우린 닭장에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직원이 닭 모이를 가져다 주자 아이들은 바로 닭장으로 뛰어갔다. 닭장에는 엄친아 닭들만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아이들이 준 닭 모이를 잘 먹었는지 제법 통통하고 잘 생겼다. 아이들이 닭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내와 나는 와인 메뉴를 보니... 테이스팅은 없고 잔(잔당 9~11불)이나 병으로만 주문하게 되어있었다. 일단 난 화이트 pinot blanc, 아내는 레드 pinor noir로 시작. 일단 와인 양도 있고 맛도 있으니 어른들은 매우 흡족. 아이들은 가끔 간식을 먹으로 테이블로 오는 것 빼고는 닭장 앞에서 계속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직원들도 어려운 만큼 팁도 20프로.
코로나19로 인해 예약 시간이 정해져서 우린 1시간 반 밖에 못 보내니 아이들과 나는 아쉬웠다. 아이들은 이미 닭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고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해피하니(= 둘이 잘 놀고), 나도 해피하고(=차분하게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와인 맛은 적당히 괜찮고... 무릉도원을 두 번이나 방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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