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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Aug 01. 2020

포틀랜드에서 중고차 팔기 분투기

어느 미국 동네에서 팔아도 비슷하겠지

“1000만원이여” - 내가 관세청 사이트 들어가서 미국에서 몰던 중고차의 관세와 운송비 등을 돌려보고 아내한테 알려준 금액.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가장 큰 고민은 일 년간 몰던 중고 SUV를 처분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 터지기 전까지 우린 이 차로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다. 이후에는 먼지가 쌓였지만... (지못미, 아니 몰.못.미.(몰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내가 예전부터 알던 현지 지인 추천으로 토요타 딜러한테 가서 중고 RAV4를 작년 여름에 구입했다. 때마침 한국에서는 반일감정이 막 시작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일제 차를 사는 게 내키지 않았으나 어린애들 끌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가서 다른 차를 고를 여유도 안 되었고 중고차니까 일본으로 돈이 안 흘러 들어간다고 생각하고(나의 논리: 암, 우리 돈은 미국인 딜러가 챙기는 거지) 그 자리에서 질렀다.


국내로 가져올까 했지만 관세, 운송비 등을 돌려보니 1000만원 가까이 나왔다. 그 가격이면 한국에서 같은 모델의 중고를 산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그래서 어떤 한 한국 가족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된 제네시스를 사는구나... 그건 관세가 안 붙으니. 그러니 too late.


현지에서 차를 팔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 우린 아래 절망의 코스를 차근차근 밟았다.


절망#1 먼저 차를 산 딜러한테 달려가서 견적을 받아보았다. 절망을 넘어서 충격. 최초 구입한 금액과 딜러가 다시 사려는 금액의 차이가 무려 700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자기네들 말로는 우리가 거기서 샀으니 100만원 정도 더 쳐준 거라고 한다. 아니 잘 쳐준 가격이 왜 중고차 사이트 KBB에서 제시한 딜러 가격과 비슷하지??

하지만 절규하기에는 이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절망#2 그래서 우린 전략을 바꾸어서 먼저 화창한 날씨에 세차하고 내부 청소하고 차 사진을 몇십 장 찍었다. 몰랐는데 뒷자리가 이렇게 더러울 줄이야. 바퀴벌레가 안 나온 게 다행이다. 아내는 한인 카페에 차를 판매한다고 글을 올렸다. 난 아내에게 부탁했다. 차 사고자 할 사람이 글을 읽고 차 사진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웃돈을 얹어서 살 수 있는 마음이 생기도록 글을 쓰라고(내가 읽어보니 눈물이 쪼금 나올 뻔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은 했지만... 딱 한 명이 “언제 가져갈 수 있나요”라는 입질 문자만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잠잠했다.

절망#3 구매자 시장이 훨씬 많은 craglist 사이트에 올려보기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인들은 감동의 눈물보다는 가격에 감동을 받으니 최대한 담백하게 내가 썼다. “Excellent. Family loved it. Certified...” 미국인들이 들으면 좋아할 만한 가격과 표현을 사용했다(KBB보다 1000불 아래로 가격을 책정했다). 그랬더니 20개 이상의 폭탄 문자가 들어왔다. 대부분 “난 [이름], 차 아직 팔아?” 그중에 가징 황당한 문자를 보낸 사람. “나 학생인데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2500불 다운시키면 안 돼? 내가 돈은 여기저기서 빌릴게” 아, 네... 읽씹. 다음분.

절망#4 그래도 그중에 괜찮아 보여서 엄선한 중국인 부부를 만나기로 했다. 선정의 이유는 그들은 구체성이 있었다. 시운전하고 싶다고 했고, 동북아시아 동지로서 이 부부에게 팔면 되겠다고 우리 부부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끗. 이 부부는 일단 10분 늦게 옴. 그리고 엔진 점검한다고 무슨 검은 작은 기계를 운전대 아래에 꽂고서 앱으로 결과받아서 이런저런 마이너 하자 있으니 정비소 가서 점검받아도 되냐고 함(나중에 찾아보니 점검은 구매자가 비용 부담하면 의례적으로 허용한다고 한다). 게다가 시운전하는데 불안하게 남편은 브레이크를 밝았다 뗐다 함(초보인가??). 그러면서 자기 2006년 트럭은 산지 얼마 안 가서 엔진 고장 났다고 여러 번 말함(아니, 우리 차는 4년밖에 안 되었는데...). 내려서는 가격 흥정을 시작하는데 부인 왈 “원래 빨간색 싫어요”(내가 올린 차 사진 안 봤어??) “500불 깎아줘요” 남편 왈 “차 사려면 월요일에 대출 가능한지 알아봐야 해” 결국 난 2시간 떠들고 허탕. 기분 상했다.


하. 지. 만. 희망을 보다(A New Hope). 받았던 여러 문자 중 어느 한 부부가 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돈을 당장 가지고 온다고 했다. 중국인 부부에게 기가 빨린 우리 가족은 일단 예정된 마지막 여행을 갔다. 거기 가서도 계속 황당한 문자가 왔지만 (“나 너랑 똑같은 차가 폐차됐음. 보험금으로 너 차 사고 싶다”), 그 점찍은 부부가 나름 대답이나 질문이 합리적이어서 쪼끔 기대를 했다. 그 사이 시애틀 한인이 차 사겠다고 연락이 와서(함정이 있었다. 그의 세 번째 전화에서 1000불 깎아 달라고 함) 이 부부에게 알려주니 오늘 당장이라도 달려오겠다고. 오... 느낌이 좋아!! 보기로 온 날 부인과 시부모가 총출동. 베트남 가족은 엔진 열어보고 시운전하고 바로 차를 사겠다고 함. 다만 쪼금 깎아서 원래 우리가 올린 가격보다 150불 낮게 팔기로 했다. 게다가 100불 스노체인도 서비스로 줌. 우린 계약금으로 50불을 요구했지만 혹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팔까 봐 오히려 우리에게 계약금을 100불 더 줌. 오... 가장 큰 장물을 일단 팔았다.


잔금 치르기 전날 나는 계약서를 준비했다. 그리고 당일 베트남 부부는 현금 다발을 들고 왔다. 난 손이 벌벌 떨면서 차 안에서 100불 지폐 한 장 한 장 세어보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악수는 못했지만 서로 잘 살자고 덕담을 주고받고 바이 바이.


아내랑 나는 슬램덩크의 마지막 위닝샷 한 강백호와 어시스트한 서태웅처럼 하이파이브, 그리고 동네 맥주집 가서 자축. 아, 한 가지 더 했다. 맥주 마시면서 DMV(자동차 관리부서)에다 차를 팔았다고 등록함으로써 완결.

내가 서태웅, 아내가 강백호

차 파는 도중에 여행 갔던 곳은 트리하우스:

https://brunch.co.kr/@jitae20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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