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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Aug 25. 2020

아내 왈 “난 (절대) 밖에서 커피 안 마셔”

절대는 아니고, 아내는 집에서 마시는 걸 선호합니다

얼마 전 자가격리가 끝나갈 무렵 포틀랜드에서 고이 모셔온 코아바 커피 가루가 동나기 시작했다. 격리 중 매일 아침에 마시던 커피를 못 마신 나의 사기가 수직 저하되었다. 그간 밤에 브런치를 쓰고(사실 인터넷 서핑이나 넷플릭스를 더 보고) 부스스 아침에 일어나서 아직도 수면 중인 뇌에 충격을 가하기 위해 강력한 커피를 마셨었다.


“난 아침에 스트롱 커피가 필요해!!!”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스텀프타운 커피콩은 좀 남아 있었다. 그걸 갈아보려고 아내한테 그라인더가 있냐고 물어보니 미국서 이미 누구에게 줬다고 한다. 한국 집에는 그라인더가 아예 없었다.

내가 번뜩 생각난 게, 그럼 무거운 걸로 커피콩을 내리찍으면 되지 않겠냐고 아내한테 물었다(내가 어디서 본 기억이 있어서... 어떤 영화에서 범인들이 마약 갈던 장면인가...). 아내는 미니쳐 절구 방망이로 커피콩을 으깨 보려 했으나 실패. 다음은 내가 나무망치를 동원. 잘 안 깨지고 시끄럽기까지 한다. 안 그래도 애들이 쿵쿵거릴 때마다 조용히 시키는데, 내가 층간소음 빌런이 될 판이다.

이걸로 콩을 으깨보려 했으나 내려치는 순간 콩이 도망간다

아내는 믹서가 있다고 했다. 남은 커피콩을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넣어서 갈아보았다. 윙잉잉... 생각보다 커피콩들이 잘 갈린다. 그리고 마셔보니 커피맛이 그럭저럭 괜찮다. 내 뇌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왼쪽이 동나기 시작한 커피, 오른쪽이 커피콩 봉지

위 커피들 모두 포틀랜드에서 가져왔는데 아내는 왼쪽 브랜드를 선호하고 난 오른쪽을 선호한다. 왼쪽은 좀 더 가볍고 과일향이 좀 더 있고, 오른쪽은 좀 더 텁텁하고 무거운 느낌이다(그리고 더 중요한 포인트: 오른쪽이 살짝 더 저렴하다).


일 년간 포틀랜드에서 살기 전 난 커피 맛을 (쪼끔만) 신경 썼는데(난 보통 아침에는 카누와 같은 블랙, 오후엔 라떼 그리고 매우 배고플 땐 이나영 커피를 마셨다), 미국에서 강제 셧다운 체험 캠프(?!)를 몇 개월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매일 갈아서 마시게 되었다. 아내는 한 술 더 떠 “난 (절대) 밖에서 커피 안 마셔”한다. 이건 마치 어린이 동화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의 여동생 롤라가 오빠 찰리한테 토마토를 안 먹겠다는 선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롤라(아내)는 찰리(남편)가 갈아준 커피만 마실꺼야

사실 아내가 틀린 말을 한 게 아닌 게 스텀프타운 커피도 집에서 직접 내린 게 가게 가서 사 마시는 것보다 좀 더 낫다. 내가 예쁜 잎사귀 모양을 못 만드니 라떼의 경우 나의 의문의 1패.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집에 있으면서 커피콩을 갈아 마시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부의 커피콩 갈기 역사는 매우 짧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는 남은 기간 동안 포틀랜드의 커피숍들을 하나씩 찾아갈 계획이었다. 포틀랜드 시민들의 부심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현지 커피에 대한 자신감이다. 스타벅스도 한국 스타벅스와 달리 포틀랜드에서는 그리 맛있지가 않다. 오히려 시내의 작은 커피숍들이 더 맛이 나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에 많이 폐업을 했다. 이런 커피숍들이 포틀랜드 지역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었을 텐데 사라져서 아쉽다.

코로나19 터지기 전 갔던 시내 커피숖 #1
코로나19 터지기 전 갔던 시내 커피숖 #2

어린이 동화 닥터 수스의 “더 로렉스”의 트러폴라 나무들이 인간들로 베어버려서 사라졌다가 마지막 나무 씨앗으로 다시 희망을 본 것처럼 포틀랜드 지역을 지탱한 작은 커피숍들이 다시 돌아오길 희망한다.

동화는 해피엔딩인데... 현실도 그러길...

오레곤 와인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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