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국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있을 문제이겠지
며칠 전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아침에 카톡이 와있었다.
우리 가족은 올여름까지 일 년간 살았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우리에게 보증금을 지금까지 안 보내고 있었다.
작년 여름, 아내는 우리 가족이 일 년간 지낼 제법 괜찮은 아파트를 발견했다. 당시 나는 뭐 비싼 월세를 내냐고 생각했지만 지어진지 몇 년 안되었다는 말에 나는 혹해서 그리로 가자고 동의했다. 여태까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집들이 20년 이상되었으니 반짝반짝한 집에서 한 번은 거주해보고 싶었다.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평수를 결정하자마자 나는 아파트 홈페이지 들어가서 신청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미국 내 신용이 없는 외국인이다 보니 보증금으로 한 달치 월세를 미리 결제하라고 한다. 국내 신용카드로 결제가 되고 계약서를 이메일로 받았다. 난 속으로 “오... 신식 아파트다 보니 이런 것도 있고 수월하게 진행되네.”
가서 미국에도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진 우리는 아파트 자체와 시설에 만족하며 살았다. 코로나19가 터지자 아파트에 살던 장점이 단점이 되어 버렸다. 가령, 이 아파트의 좁은 복도를 지나가다 반대쪽에서 사람이 오면 상대방이 지나가기 전까지 벽을 보고 기다려야 했고, 이 아파트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다 보니 누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게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자, 난 보증금에 대한 회수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했다. 얼마나 깎을지, 어떻게 돌려받을지 등을 관리사무소에 물어봤다. 다른 아파트와 달리 여기는 나가는 날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가고 나서 며칠 후 검사를 하고 나서 보증금에서 해당 금액을 제하고 준다고 했다. 그리고 이 금액을 수표로 보내준다고 했다.
난 신용카드로 결제했으니 해당 신용카드사를 통해서 돌려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물었더니 안된다고 한다. 그럼 아내 미국 계좌로 이체는? 이것도 안된다고 한다. 다른 입주민처럼 수표로만 돌려준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건 한국으로도 수표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아내가 모바일 뱅킹으로 받은 수표를 입금할 수 있으니 이 방법이 괜찮아 보였다. 국내에 돌아오고 나서 나의 첫 번째 판단이 잘못된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집을 비우고 한국을 돌아온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검사비로 보증금 중 1/3을 제하고 회계팀에서 발송했다고 했다. 한 달을 더 기다렸지만 우리 집 우체통은 잠잠하다. 다시 연락해보니 우리 집 주소가 잘못되어서 전달이 안 된 것 같다는 회신이 왔다. 여기서 나의 두 번째 판단이 잘못된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럼 다시 한국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30일이 지나도 안 오자 관리사무소에 다시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코로나19로 국제 우편이 많이 지연된다면서 해외에 있는 자기 친구도 40일 지나서야 우편을 받았다고 했다. 그제야 난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보내라고 했다. 지인이 은행이 직접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한국에서 수표를 기다리다간 언제 올지도 모르니 이 방법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소극적으로 관리사무소에게 진행상황을 알려달라고 한 것이 나의 세 번째 판단이 잘못된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또 한 달이 지났지만 지인은 못 받았다고 한다. 아내가 관리사무소 보증금 돌려줄 생각이 없는 거 아니냐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입주했던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많이 나갈 텐데 우리 같이 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과연 보증금을 돌려줄까 한다. 합리저 의심은 내 전문인데 아내 말을 듣고 보니 퍼즐이 맞춰진다. 생각해보면 1) 관리사무소의 잘못된 주소로 안 갔다는 회신, 2) 한국으로 보냈다는 우편은 3개월이 지나도 안 오고, 3) 코로나19라지만 미국 내 우편물이 한 달씩 걸릴 리가 없지 않은가. 관리사무소는 보증금 수표를 보낼 생각이 없던 것 같다.
난 소송 천국인 미국에서 무엇이 되게 하려면 소송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면 될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엔 “법적 조치(소송)를 알아볼 것이다”하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관리사무소에서 회신이 빨리 왔다. 지난달에 이미 회계팀에서 수표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제공한 지인의 주소가 맞냐고 물어본다. 한 달 전에 보내 놓고 이제 와서 내가 제공한 주소가 정확한지 재확인? 말이 안 된다. 보내지 않은 것이다.
난 2주를 기다렸다가 더 강한 톤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올해 말까지 안 보내면 법적 조치를 할 것이고 그 동네 변호사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1주일 정도 지나자 지인으로부터 수표를 받았다고 카톡이 왔다. 아래 수표에는 없지만 수표 윗부분에는 수표를 발행한 날짜들이 적혀 있었는데 관리사무소가 말한 발송 날짜와 차이가 많이 났다. 결론: 관리사무실은 한국에 2차 발송하지 않았었고(아직까지 못 받음), 내가 보낸 최후통첩 이메일을 이들이 받기 전에는 지인에게 수표를 발송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태를 겪으면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1) 단기간만 미국에 거주하고 돌아가는 외국인이 미국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상대할 땐 최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지만 필요시 이메일과 같은 근거를 남기고 법적 조치하겠다는 강공을 걸지 않으면, 관리사무소는 외국인이 돌아가고 나서 액수가 적어서 포기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판단하고 무관심이나 지연 작전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2)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관리사무소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해당 직원이 부재중일 것을 대비해서 그 위 보스를 이메일에 포함시켜서 보내야 한다. 실제로 이메일을 보낼 때 2-3번은 직원이 휴가 갔다고 자동응답 메일을 받았었다.
3) 만약 아파트 관리사무소 수표가 내년 1월에도 도착하지 않았다면 난 동네 소액청구법원(small claims court)을 활용해서 압박 수위를 높이려고 했다. 보증금 금액이 크지 않은데 일반 법원을 가면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난 법원 수수료 5만원 정도 내고 현지 변호사에게 얼마 주고 소액청구법원에서 진행하려고 했다. 이 단계까지 가면 사실상 내가 받아야 할 금액을 100% 받는 것을 포기해야겠지만...
연말에 골치 아팠던 과제들이 하나 둘씩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한국 집주인은 나가라고 했던 글:
https://brunch.co.kr/@jitae2020/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