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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Feb 15. 2023

중년 물고기가 젊은 물(직장)을 만났을 때

15년 걸려서 나의 유머 코드가 통하는 직장을 만나다

약 반년 전 새 직장으로 옮겨서 와보니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했다:


1) 직원 평균 나이 20대 후반이다.

2) 대표는 나보다 몇 년 젊다

3) 내 직속 상사는 나보나 7살 젊다


입사 후 계산해 보니 나 입사 전 평균 나이가 29.5였다면, 내가 입사함으로써 0.3 정도 올려놓았다.


바로 전 직장에서 난 이미 2), 3)을 비슷하게 경험해 봐서 업무적으로 큰 우려는 없었다. 1)의 경우, 전 직장보다 여기가 더 젊다. 전 직장에는 내 또래가 여러 명 있었지만 지금 직장에 왔을 때 40대 중반은 나, 대표 정도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내 옆자리에 앉은 분이 나보다 살짝 위인걸 알았지만.


다만 내가 여기 조직에 문화적으로 맞을지 기대반 우려반이 있었다. 기대는 젊고 유능한 동료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있다는 점, 그리고 우려는 이들과 잘 맞을지였다.


이전 직장에서는 코로나19가 심할 때다 보니 재택근무를 첫 3개월 동안 했었고 줌으로 주로 회의를 하다 보니 동료들과 친해질 계기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40대 중 어울릴 만한 분들이 몇몇 있어서 아재들끼리 가끔 맥주 한잔 했었다. 하지만 단체 챗방에서는 어울리기가 어려웠다. 기존 분들끼리 친하다 보니 내가 어울리기 어려운 것도 있었고 내 개그코드가 안 맞은 것도 있었다.


지금 직장으로 와보니 전 직장과 비슷하게 단체 챗방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특이하게 “전체방”과 “잡담방” 두 개로 구분되어 있었다.


전체방은 주로 업무와 연관된 이야기와 링크, 잡담방은 기타 내용이 올라왔다. 잡담방은 주로 간식, 생일, 야근 저녁 등을 공유했다.


한 가지 특징은 생일자에게 축하를 할 때 밈의 활용이 높았다. (밈: 재밌는 말과 행동을 온라인상에서 모방하거나 재가공한 콘텐츠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용어).


”오호…“


난 간간히 20여 년 전 군대에서 조악하게 배운 그림판 프로그램,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다운로드한 사진을 편집 프로그램으로 가족들 사진들을 합성해서 가족들에게 공유하곤 했다. 조카들이 많다 보니 장인, 장모님이나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내드리곤 했다.

어르신 보관용 사진

몇 번 해보니 제작 포인트는 얼굴 사이즈와 바라보는 각도가 비슷해야 그럴듯하게 사진이 나온다.


몇 번 합성 사진을 보내드렸더니 장모님께서 일을 바꿔보라고 농담을 하셨는데, 난 속으로 이걸로 밥벌이는 못하죠…


다만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사진을 편집할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대학 동창 방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현 직장에 와보니… 그동안 먼지 쌓인 실력을 발휘해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회사 앞에 사는 길냥이가 좋아하는 자리에 직장 동료 3명이 앉아 있던 걸 누가 찍어서 챗방에 올렸다. 그러자 누가 대학내일 화보 갔다고 화답. 그리고 누구는 길순이 자리를 닝겐(=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놀렸다.


길순이 사진 + 화보 + 대학내일 잡지 = 밈


내가 앉는 자리가 공개 자리다 보니 난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짓고 밈 작업을 했다.


“후… 이제 올려보자 “


직장내 첫 밈

결과는 조회수 100만… 은 아니고 중년의 데뷔작 치고는 반응이 괜찮았다.


이후 해외 출장 가서 경유지에서 7시간을 기다리면서 인물 사진을 편집했고, 이후에도 틈틈이 올렸다.


15년 만에 내 유머 코드가 통하는 조직이 40대 중후반에 찾아올 줄이야… 감사하다.


나에게 밈 제작은 취미이자 스트레스도 풀기 좋은 용도이다. 보고서와 행사를 준비할 때 극한의 스트레스까지 안 가고 버틴 것은 한약과 밈 제작이었다. 아니 한약이 더 효과가 있었을지도…


대외협력팀 직원 생일 축하 밈




현 직장 첫 출근 글:

https://brunch.co.kr/@jitae202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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