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퉁불퉁 뚝배기 Aug 27. 2020

갈치를 먹고 싶은데 못 먹으면 (평생) 후회한다

그래서 난 이제 먹고 싶은걸 바로 먹는다

얼마 전 장모님 댁에 가서 갈치를 먹다 과거 생각이 다시 났다. 몇 년 전 일이었다. 애들이 어릴 때 (아직도 어리지만) 장모님 댁에 일요일 저녁을 동냥하러 갔었다. 조카들도 옆에 살아서 애들끼리 놀면 시간도 잘 가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주말에 소모된 에너지를 더 소진하지 않아도 되고. 일타쌍피다.


그날 저녁은 특별히 어디서 올라온 도톰한 황금 갈치가 나왔다. 생선구이에 자신이 있으신 장모님이 평소보다도 더 갈치를 잘 구우신 것 같다. 슬램덩크 정대만이 산왕과의 경기 초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3점 슛을 3연속 넣었듯이, 갈치의 크기. 생선용 프라이팬으로 구워진 상태. 그리고 적절한 구이 시간. 완벽한 갈치의 탄생이다.

장모님의 황금 갈치는 삼박자가 맞아서 탄생했다

다른 반찬도 많았지만 난 그날 유독 갈치에 눈이 갔다. 하지만 내 왼쪽엔 가족한텐 과묵하시지만 친구분들한텐 과묵하지 않으신 장인 어르신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아직도 엄연한 유교사회이니 감히 내가 먼저 젓가락으로 퍼펙트한 갈치를 건드릴 수 없으니, 장인 어르신을 갈치를 집게끔 유도하자고 생각을 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저... 아버지, 갈치 드셔 보세요.” 하지만 장인 어르신은 여전히 묵묵히 다른 반찬을 드시고 계셨다. 잘 못 들으셨나 보다. 한번 더 심호흡을 하고 난 용기를 내서 좀 더 큰 카카오 미니 스피커 볼륨 4의 목소리로 “아버지, 갈치 식기 전에 한번 드셔 보세요” (....) 하지만 이번에도 묵묵부답.


이제 난 밥을 반 이상 먹어가고 있었다. 일단 급한 불을 꺼야 하니(내 굶주린 배를 채워야 하니) 예나 지금이나 기억도 나지 않는 다른 반찬들을 일단 먹었다. 그러면서 내 왼쪽 눈은 계속 장인 어르신 젓가락을 추적하고 있었다. 식사 완료까지 25프로.... 식사 완료까지 10 프로 남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소프트웨어 설치(식사) 완료 바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황금 갈치는 식어갔다. 결국 난 못 먹고 집에 돌아왔다.

식사 완료까지 10프로 남았습니다.

후유증은 컸다. 난 밥을 먹을 때마다 못 먹은 황금 갈치가 계속 생각이 났다. 심지어 잠들기 전에 아내한테 수차례 말했다. “아... 아직도 눈앞에 (갈치가) 어른거려...” 보다 못한 아내는 집에서 갈치를 구워서 줬지만 그 먹어보지 못한 환상의 갈치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갈치가 나오는 꿈도 꿨던것 같다.

황금 갈치를 잊지 못한 나의 리액션은 위 미스터 초밥왕 조연과 같았다

그 이후 장모님이 구워주신 갈치를 먹어봤지만 그 황금 갈치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 갈치는 신의 영역이라 넘사벽이 되었고 무슨 갈치를 먹어도 그 먹어보지 못한 맛을 재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스스로 그 갈치를 완벽하다고 설정 해놓고 이후 한동안 모든 갈치를 그 갈치에 비교했었다.


갈치 사건 이후 아내는 나한테 “우리 집에서는 먹고 싶은 사람이 많이 먹어야 해”라는 말을 종종 한다. 나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원하는 걸 바로 흡입한다.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잡아야 한다. 못 먹은 갈치를 통해 배운 나의 작은 인생 교훈이다.


p.s. 확인해보니 우리 애들과 조카들이 그 갈치를 먹었다고 한다


장모님의 명언 글:

https://brunch.co.kr/@jitae2020/39






이전 03화 미래의 아내가 계약연애를 제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