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첫 번째 사랑처럼 훅 다가온 아침 향기
아침 출근길, 녹색라인을 따라 천천히 서울을 반 시계 방향으로 휘감는다. 햇살이 좋은 아침, 다행히도 2호선 지하철은 지상을 나긋나긋 걷는다. 지하로 들어가기 전,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자처럼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신다. 호흡을 들이마시며 햇살을 끝까지 받아들인다. 지하로 들어가면 더 이상 햇살은 없다. 지하철에서 마지막 햇살인 것이다.
아침이지만 이미 지친 사람들, 반대편에서 멍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전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더 이상 사람들과 눈빛이 마주 치치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광화문에 도착했다. 다시 햇살을 받아들이려 지친 몸을 지상 위로 끌어올린다. 어영차 어영차...
항상 반복되는 걸음걸음.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어 왜 이러지?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희미한 공기의 잔상. 점점 강열해지는 그 느낌.
순간 훅 치고 들어오는 라일락 향이었다. 이 세상의 향이 아닌 시각, 청각이 마비될 정도의 향기였다.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그런 장애물은 애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걸 뛰어넘는 황홀한 향들.
하루 중에서 광화문이라는 공간에 가장 긴 시간을 서식하지만 이곳에 라일락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얼마나 많이 지나친 길이던가. 눈길은 주었지만 인지하지 못했다. 봄이 된지도 한 달이 훨씬 지났다.
그 날 아침 중세 마법이 실현되어 라일락 향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너무나 정열적인 향기라 무의식은 다리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무심결에 1분 넘게 다른 길로 향했고 이를 인지한 시점에는 온몸 가득 라일락에 결박되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기억난다. 천천히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서 입과 코를 막고 있던 마스크를 벗는다. 오른손이 올라간 길과 내려온 길이 너무나 정확히 기억날 정도로 천천히 모든 건 흘러갔다. 눈을 감았고 코를 벌름거렸다. 눈을 떴고 라일락이 나를 반겨주었다. 마법 같은 1분이 흘렀다. 드디어 발걸음을 떼며 카메라를 꺼냈다. 향을 담고 싶은 마음이지만 라일락의 흔적만 간신히 담았다.
그렇게 2019년 봄 어느 날 아침에 날 찾아온 중세 마법은 천천히 풀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