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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라책방 Feb 04. 2024

입시 대장정을 마치며

Go, Back - 25 끝인 줄 알았는데 이제 시작이라니

드디어 끝났다.

M의 합격 발표가 나던 날 나는 불안해서 운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었으므로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출근했다. 똑딱똑딱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내 앞의 신호가 초록인지 빨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 수 없이 노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M이 그토록 원했던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노안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다시 입력해 주세요.

수헙번호가 틀렸단다. 다시 입력했는데 또 틀렸단다. 그리고 한 번 더 틀렸다. 아이의 대입 발표가 이렇게까지 긴장할 일인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나를 다독였다. M에게 카톡이 왔다. 합격증이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물론 기쁨의 의미가 가장 먼저였고 이제 정말 끝이라는 시원함과 모두의 기원에 대한 보답을 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무엇보다 M이 대견했다.


국악중학교 가고 싶어.

국악? 내가 아는 국악? 우리는 국악을 글자로만 알았지 실은 잘 듣지도 않는 음악이었다. 누구나 한 번은 꿈꿀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장래희망이 아니었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따라서 반대했다. 정간보는커녕 오선 악보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합리적인 이유로 반대를 했는데 사실 나의 속마음은 음악 특히 국악이 낯설었기 때문에 멀리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 피아노 배울래.

절대 배우지 않겠다던 피아노를 오선악보를 익히기 위해 시작했고, 방과 후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시간씩 가야금도 배웠다. 설마 이걸로 국악중학교에 가겠나 싶었고 이러다가 말겠지 하는 마음도 컸다. 우리는 살면서 큰 착각을 여러 번 하는데 바로 이때가 나의 착각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방과 후 가야금 수업은 M의 마음에 국악에 대한 불쏘시개로 작동했는지 나와는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입시 언제 준비해?

M과 나의 간극을 좁히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나는 M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국악중학교에 들어가려면 청음과 학과 공부,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따라서 피아노 선생님에게 청음을 부탁했고, 나와 아이는 매일 문제집을 풀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 두 가지를 전문 학원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모르면 용감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M과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고, 몰랐던 만큼 크게 용감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새벽같이 일어나 등교했고 밤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운전대를 잡고 왕복 50km 거리를 하루에 두 번씩 오간 나도 이상하거나 대단하거나 둘 중 하나인 엄마였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싫다는 M을 어떻게 하냐는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같은 이유로 다른 아이들은 자취를 했다는 것도 얼마 전에야 들어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게 차라리 나았던 걸까?

레슨 선생님도, 연습실도, 발표회도, 자취도, 악기도, 공연도 하나 같이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학부모 모임에서 나는 동떨어지다 못해 조금 모자란 엄마였다. 뭐 하나 공유할 정보가 있어야 말이지. 나는 하나 내놓고 하나 가지는 give & take 원리를 충족할 수 없었으며, 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 나는 한 때 그것을 험담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며 불평했지만, 안으로는 부러움과 자격지심으로 쪼그라들었었다. 모르는 것 천지였던 와중에도 단 하나, 음악에 대한 M의 열정만은 알고 있었으니 그것만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엄마였기에 사공은 오직 M 뿐이었다.


난 갈수록 음악이 더 좋아.

예체능 학과 특성상 정시 지원하는 학교들보다 한참 일찍 합격 발표가 있었다. 가까이는 조카가 고3이었고, 주변에 노심초사하는 학부모가 많았기에 나는 어딜 가도 M에 대한 말을 아꼈다. 혹여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조심스러웠고,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경우에는 합격의 기운을 넘치게 전하기 위해 힘껏 안아주었다. 한아름으로 안기는 그들에게서 나와 같은 불안과 걱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뭉클하며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응원의 마음만은 진심으로 심어주었다. M도 그러라고 했다. 자기도 아직 얼떨떨하고 긴장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퍼줄 수만 있다면야 뭐가 되었든 나누라고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음악이 더 좋아진다는 M의 진심을 응원이라는 포장지로 감사서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나 떨어졌대.

학교가 멀다. 굉장히 멀다. 직선거리는 41km, 대중교통으로는 2시간 걸리는 곳이라 기숙사가 당연히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똑 떨어졌다. 경기권은 안 될 거라던 학교의 안내가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경기권이라 통학이 가능하다는 전제에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다는 말이지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건 아니다. 도저히 통학은 불가하므로 자취방을 알아보아야 하는데 전화하는 부동산마다 방이 없다고 해서 나는 당황했다. 하루 4시간을 통학하는 게 맞을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대.

이 말이 맞는 걸까?  우선 방을 알아보아야 하는데 이상스러울 만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도 마음이 아직 동하지 않은 모양이다. 20살이 되도록 끼고 키웠으니 이제 내놓아도 될 때라는 말에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 지인이 구더기가 나와도 내보내는 게 맞다며 나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구더기라는 말에 소름이 돋아 더 끼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야.

구더기를 언급했던 지인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너무 걱정 말라고 나를 위로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가슴이 철렁하는 사이즈가 다를 것이므로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라고 했다.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는 것에 동의한다.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우리의 인생은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끝인 줄 알았으나 시작이고, 시작인 줄 알았으나 끝일 수 있으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매 순간 본인의 열정에 최선을 하나는 수밖에. 나도 그렇고 M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응원하며 대입 대장정을 마쳤다. 지금 이 순간이 M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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