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누군가 내게 다가와, “교사로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사람의 눈을 응시하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릴 것이다. 당황하던 그가 어설픈 위로를 건네려고 하면, 나는 틈을 주지 않고 내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서 겸손한 헬스로 단련된 모진 상체를 내보일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노출증 환자라고 의심하겠지만, 그저 내 가슴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구멍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렇게 크게 뚫려 있는 가슴을 보고 더 이상 말을 붙일 영웅은 없다. 머쓱하게 돌아서는 그에게 나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속삭일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교사의 가슴은 이렇게 ‘뻥’하고 뚫려있다고.
2023년 7월, 교사들의 가슴에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뚫렸다. 서이초 교사가 남긴 ‘교실에서의 죽음’이라는 두 단어는 우리 사회와 교사 모두에게 큰 숙제였다. 늘 그렇듯 우리 사회는 그 숙제를 외면했다. 젊은 교사가 교실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고, 책임을 물으려는 사람도 없었다. 얼버무림과 외면의 시간 앞에서 그 여린 죽음은 다시 망각의 영역으로 추방되었는데, 여전히 자신의 삶을 ‘운’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 교사의 가슴에는 메울 수 없는 허무가 자리했다.
가슴이 뚫린 사람은 반드시 주저앉는다. 거대한 헛헛함 앞에서 숨은 계속 새어나갈 것이고 반복되는 어지러움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허무와 절망을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주저앉은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결국, 지금의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의 기립근’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기립근이 있다. 이 근육은 꾸준히 단련하지 않으면 금방 흐물거린다. 그래서 자신에게 그러한 근육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기립근을 단련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자 내 발로 세상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삶의 기립근’은 발에 차이도록 널린 자기계발서에 적혀 있는 ‘긍정적인 마음’, ‘여행과 힐링’, ‘선명한 꿈’과 같은 오묘한 처방으로는 바로 서지 않는다. 이 말들은 얼핏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저 말들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아니라 삶을 마취하는 ‘저곳’을 위한 허위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철저히 ‘이곳’, 다시 말해 교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흐물거리는 기립근에 다시 힘을 실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사는 학교와 헬스장에서 삶의 기립근을 단련해야 한다.
학교와 헬스장이라고? 이쯤 되면 “이 뜬금없는 조합은 뭐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학교와 헬스장은 하나다. 학교와 헬스장은 얼핏 보면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본질은 같다. 바로 ‘기립근’을 단련하는 일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학교는 ‘정신적 기립근’을 단련하고, 헬스장은 ‘육체적 기립근’을 훈련할 뿐이다. 그러나 두 곳 모두 삶을 살아가는 코어 힘을 배우는 공간인 동시에,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는 기립근을 단련하는 곳이다.
문제는 이렇게 ‘본질’을 추구하는 학교와 헬스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학교는 오랜 시간 관료주의와 계량주의로 굴러가는 공간이었기에 ‘교사의 삶’을 배우기 어려운 곳이었다. 헬스장도 마찬가지다. 우후죽순으로 헬스장이 생겨나면서 운동의 본질은 자본에 밀려나고 있으며, 운동의 핵심을 담백하게 알려주는 트레이너와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나 더 큰 난관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다. 교사 삶과 근육의 핵심에 다가서려면 그동안 익숙하게 반복했던 ‘나’를 버려야 한다. 학교가 오랜 시간 공들여 가꿔온 ‘관성의 법칙’은 삶의 기립근을 무너트리는 일들도 익숙한 것이라면 그대로 반복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본질을 말하는 학교와 사람들이 건네는 ‘이상함’과 직면해야 한다.
헬스장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바디프로필과 근육의 외형을 말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근육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공들여 설명하는 ‘요상한’ 트레이너를 만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기립근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결국 교사가 삶의 기립근을 단련하는 일은 ‘이상함’과 ‘요상함’을 함께 만나는 일이자, 그것과 함께 춤추는 것이다.
이 글은 교사로서의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꾼 ‘교방초등학교’와 우연히 찾아간 헬스장에서 겪은 첫 해의 이야기이다. 교방초등학교는 혁신학교였지만 혁신학교라는 이름은 ‘개나 줘버려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상한’ 학교였다. 동네 헬스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근육을 자꾸 느껴보라고 말하는 트레이너와 근력 운동이 아니라 머신에 기대어 발차기를 하러 오는 사람, 자꾸만 인사를 건네며 나의 운동 상황을 묻는 사람으로 붐비는 요상한 헬스장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함과 요상함이 결국 나의 기립근을 단련해 주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내고자 한다.
학교와 헬스장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