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보다 몸을 먼저 보세요!
등이 굽었고 어깨가 말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팔다리가 힘 없이 흐느적거린다는 것도 느끼고 있었지만 외면했다. 급식소에서 어느 선생님이 나의 등짝을 ‘쫘악’ 하고 치기 전까지 말이다.
그 선배 선생님은 내가 구부정하다면서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나는 웃으며 ‘얍’하고 등을 폈지만 그렇게 펴진 등도 오래가지 않았다.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내 힘을 잃었고, 사방으로 흔들리는 사지는 축 늘어진 채 컴퓨터 앞에 놓였다. 그렇다. 나는 오랜 시간 내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신규 시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허나 교사로 사는 일은 나의 존재를 가장 뒤로 미루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학교는 오랜 시간 ‘교사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오묘한 문화를 만들어 왔다. 이 문화 속에서 교사는 자신의 진심과 고통을 최대한 숨기고 자기에게 쏟아지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들을 묵묵히 수용하는 삶에 길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소외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을 소외시킨 사람은 몸과 마음이 병든다.
나는 급식소 사건을 기점으로 정신이 번쩍 들어서 정말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것이 실천으로 옮긴 것은 다시 몇 년이 흐른 후였다. 몸이 흐느적거리는 것을 넘어서 마음까지 흐느적거리는 시점이 찾아왔고,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PT를 끊었다. 게으른 성격을 잘 알기에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아파트 커뮤니티에 있는 헬스장으로 말이다.
헬스장을 찾은 것은 실로 20년 만이었다. 대학생 시절 잠시 근력 운동을 하고, 20년 가까이 가지 않았던 곳이다. 헬스장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코를 찌르는 쇠의 향과 미세하기 풍겨오는 땀 냄새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었다. 괴성을 지르며 마지막 힘을 짜내는 사람도 그대로였고, 크게 울리는 음악 소리도 여전했다.
그러나 내가 간 헬스장은 조금 요상했다. ‘여백’ 공간이 많았다. 충분히 운동기구를 놓아도 될만한 공간이지만 텅텅 비워둔 곳이 많았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매트가 깔려 있거나 쌓여있었다. 그 여백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O가 소리 없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군인이 메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O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덩치가 컸다. 머리는 짧고 눈은 부리부리했으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미소를 보니 마음이 ‘툭’하고 놓였다. 나는 원래 낯을 조금 가리는 성격인데, 다정한 사람이면 금방 마음이 열린다. O는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인바디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검사는 간단히 진행되었고, 검사지에는 다양한 숫자들이 찍혀있었다. 그 숫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한 후 입을 굳게 다물고 미간을 급하게 모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면서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숫자보다 몸을 먼저 보셔야 해요.”
몸을 먼저 보라니. 나는 언제나 내 몸을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숫자보다 몸을 먼저 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고승이 선문답을 던지고 소리 없이 먼저 걸어가듯, O도 그 말을 던지며 나에게 따라오라는 눈빛을 건넸다. 그는 헬스장의 여백에 가지런히 놓인 요가매트로 걸어갔고, 우리는 나란히 신발을 벗고 매트 위로 올라섰다.
O는 우리 헬스장이 다른 곳에 비해서 여유 공간도 넓고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별도의 룸들도 많이 있으니 그곳에서 매일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동작을 따라 해 보라면서 동작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주로 유연성을 검사하는 동작이었다. 나는 통나무처럼 굳은 몸을 이리저리 꼬며 동작을 따라 했지만, 내가 봐도 민망할 정도로 몸이 굳어있었다. O는 비장한 눈빛으로 나의 몸을 관찰하고 계속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그리고 현재 나의 몸이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기억하고, 그것을 조금씩 늘려가는 일을 천천히 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들은 햄스트링과 장요근이 짧아지기 때문에 그것을 늘려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알려주었다.
스트레칭의 종류를 아주 많았다. 맨몸으로 하는 것도 있었고, 도구의 힘을 빌리는 것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폼롤러를 이용하여 하체와 상체를 골고루 풀어주는 것은 운동 전후에 해주어야 중요한 과정이었다. O는 하체의 스트레칭을 도와주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고, 다시 상담실로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인바디 기계를 그윽이 바라보며 말했다.
회원 중에는 운동을 조금 하고 나면, 바로 인바디 검사를 하면서 수치의 변화를 확인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은 그것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숫자는 하나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일 뿐, 실제 ‘나의 몸’의 움직임과 상태를 증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하면서 내가 어떤 한계와 가능성을 지녔는지를 몸으로 직접 느껴야 하고, 그 과정은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매일’ 지속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몸을 보라는 말은 내 몸의 한계와 변화를 매일 보라는 말이었다.
숫자는 솔직한 한계와 느린 변화를 담지 못한다. 그래서 숫자는 우리의 삶을 매일 조급하게 만든다. 교사의 삶을 지배하는 것 역시 공문에 찍혀 내려오는 수많은 숫자와 통계 값이다. 교사는 숫자 앞에서 조급해지고, 한계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지 못하는 숫자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방치한다. 이 방치를 멈추는 힘은 나의 한계와 결핍, 그리고 고통과 마주하는 시간에서 시작하는데, 이 시간을 우리는 ‘여백’이라고 부른다. 결국 운동은 여백에서 시작해서 여백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것을 O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말이, 운동기구로 꽉 찬 곳이 아니라 빈 곳에서 먼저 시작하라는 말이, 오랜 시간 방치했던 나의 몸을 일깨웠다. 누군가 내가 만드는 실적이 아니라 내 몸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굉장한 힘이 생겼다. 그리고 헬스장 곳곳을 메우고 있는 무수한 여백에 내 몸을 누이고 싶었다.
몽글몽글해진 마음을 뒤로하고 헬스장 현관으로 걸어갔다. 순간 내 등 뒤로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선풍기 바람인가 하고 돌아보았지만, 그곳에 선풍기는 없었다. 그저 짧은 타이즈를 입고 프레스 머신을 손에 쥔 채 연신 허공에 발차기를 하고 있는 N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