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환영해 주지?
교사의 삶은 헐겁다.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근무한 학교라 하더라도 계속 근무할 수 없다. 어느 순간이 오면 숙명처럼 ‘전보내신’이라는 것을 적어야 하고, 그 얇은 종이 한 장에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 교사는 평생 동안 이 속절없는 옮김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는 언제나 낯설고 힘들다.
2020년, 나는 ‘행복학교’ 간판을 걸고 있는 교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발령통지서를 받자마자 내 몸은 바로 긴장되었다. 새로운 학교에서의 시작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학교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업무처리 방식에서부터 급식소 사용과 분리수거 배출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쌓아온 문화가 다르기에 그것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일 년이 지나고 나야 어느 정도 경직된 몸이 풀리는데, 그 시간 동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급적 참아야 한다. 학교는 전입한 교사의 의견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일 년만 버티면 내년에는 나아져요”라며 묘한 웃음을 흘릴 뿐이다. 주기적으로 학교를 옮겨야 하는 교사의 삶은 일 년 동안 긴장과 침묵의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해방을 맞게 되는 암묵적 계약으로 작동한다.
일 년 동안 견뎌야 할 긴장과 침묵은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모이는 첫날부터 어김없이 작동한다. 그날은 교사의 일 년 살이를 좌우하는 수많은 일들이 우당탕탕 결정되는 날이자, 기존에 근무하던 교사와 전입한 교사가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이다. 이토록 중요한 결정과 만남이 압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 앞에서 학교는 철저히 무력하다. 학교에는 환대의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효율적 ‘결정’을 하는 방법은 오랜 시간 가꾸어 왔지만,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는 ‘환대’의 방법은 내팽개쳐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교의 전입교사 환영식은 진지하게 시작된다. 돌아가며 자기 이름을 소개하고 어색한 박수를 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교사들은 이 어색한 만남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농담을 하지도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꺼내지도 않으며, 최대한 무심하게 자신의 존재를 툭 던져놓고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면 바로 학교배정 같은 ‘결정’의 시간이 길게 이어진다. 교사에게 ‘환대’는 매우 낯선 말이다. 환대가 없는 학교 문화 속에서 교사의 경직된 몸은 좀체 풀리지 않는다.
나 역시 학교를 몇 번 옮겨보았기에, 교방에서의 처음을 기대하지 않았다. 전입교사 인사를 한다고 불러내길래, 속으로 “이제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나의 손에 먼저 쥐어진 것은 차가운 교육과정책자와 업무분장 서류가 아니라 영롱한 색을 내뿜고 있는 장미였다.
장미라니? 졸업식을 제외하고 거의 꽃을 받아보지 않았던 나는 어색하게 꽃을 받았다. 꽃을 건넨 사람은 J였다. J는 언제나 교사들 틈에 섞여 있었고, 사연 많은 무림 고수와 같은 눈빛으로 전입한 모든 교사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그렇게 꽃을 받아 든 전입교사들은 장미의 체온을 느끼며 자기의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놓았고, 기존의 교사들은 영롱한 눈빛을 하고 그 말을 오롯이 경청했다. 이 따뜻한 경청은 뭐지? 매우 어색했다.
장미를 안고 자리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마카롱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긴장했을 텐데 몸과 마음을 먼저 녹이라며 거기 모인 수 십 명의 교사들에게 예쁜 마카롱이 배달되었다. 마카롱의 당분이 내 몸에 스며들 즈음, 마음에 걸어두었던 긴장이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번지는 미소를 억누르며 도망가려던 긴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왜 학년과 업무분장 이야기가 없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나의 모습을 K는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말없이 안경테를 만지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다른 학교 같았으면, 이미 학년과 업무배정을 끝내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지만, 교방 사람들은 여전히 마카롱을 먹으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교무부장 선생님이 앞으로 나오셨다. 나는 “드디어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다져온 긴장 시뮬레이션을 가동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교무부장 선생님은 업무이야기가 아니라 ‘성격유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학교 교육과정 설명도 아니고 성격유형 강의라니? 순간 정신이 혼미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격유형검사’보다 조금 더 쉽게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검사지와 이를 통해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무엇보다 새로 전입한 교사들과 눈 맞춤을 하면서 선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교방은 ‘업무’가 아니라 ‘사람’으로 모든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교방은 언제나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차이를 존중하며, 모든 구성원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참 이상한 학교였다.
드디어 학년 배정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또 뭔가 이상했다. 1학년에서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년의 자리가 골고루 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카롱이 남긴 혈당 스파이크에 취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눈에 힘을 주고 다시 종이를 들여다보았지만 그대로였다. 보통의 학교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선호하는 학년은 기존의 교사들로 채워지고, 선호하지 않는 학년은 통째로 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입교사로만 한 학년이 채워지는 경우도 많다. 물론 어떻게든 일 년을 견뎌내지만, 그 계약의 시간은 교사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그런데 교방에는 많은 여백이 존재했다. 나는 이상한 현황표를 보면서 “설마 이 학교는 모든 학년이 골고루 힘든가?”라는 극단적 생각에 이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한 ‘여백’은 학교 구성원이 준비한 ‘환대’의 일부였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환대를 ‘자리를 주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환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낯선 공간에 처음 들어선 사람이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는 공간을 미리 마련하고, 그것을 조건 없이 건네는 일이다. 그래서 교방의 교사들은 특정 학년을 독점하지 않고, 새로 전입해 올 교사를 위해서 학년마다 1-2자리씩 비워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새로 전입한 교사가 학교 상황에 익숙한 사람과 함께 일 년을 보내도록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환대는 조건과 계약을 뭉개는 것에서 시작하나 보다.
교방의 환대는 모두 ‘사람’을 기르는 일이 우선이라는 철학 때문이었다. 동시에 ‘다른 우리가 모여 함께 빛나는 학교’라는 교방의 비전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었다. 길었던 학년 및 업무 배정 토론을 마치고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지만, 교방은 그것을 바로 결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였고, 비어있는 학년의 자리를 급하게 채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비록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업무의 방식이 아닌 대화의 방식으로 그 어려운 과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여백과 기다림 앞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다.
꽃과 마카롱을 건네는 J의 미소가,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의 여유가, 나의 말을 깊이 경청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깊은 위안이 되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사로서 처음 겪은 환대들을 하나씩 곱씹으로 묘하게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 간질거림은 오랜 시간 내 삶을 지배해 온 계약들을 흐물거리게 만들었고, 그렇게 나의 해방일지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