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없는 시간에 갇힌다
짙은 행복 다음에 찾아오는 동굴 같은 시기가 있다. 우울하거나 아픈 것도 아닌데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지독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 속에 갇힌다. 특별한 사건이 있기도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기분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기도 한다. 꽁꽁 숨어있을 때면 안부 연락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아질 수 있을 텐데, 이번에도 솔직할 용기는 없었다.
이번 동굴은 3주 동안의 긴 여름휴가를 보낸 후에 찾아왔다.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새로운 일상을 살았다. 일상 속에 회사와 일을 지우고 꿈꾸던 직업과 일을 삶에 칠했다. 매일이 행복해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챙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동굴에 들어갔다. 처서(處暑)부터 상강(霜降)까지,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행으로 이끄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동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길을 잃는다. 보통의 행복을 잊게 된다. 무너지고 넘어지며 동굴 속에서 길을 헤맸다. 시간이 지나면 동굴에서 느끼는 감정도 지겹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무기력에 지치고 우울에 무뎌진다. 다시 보통의 행복을 찾아 나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