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너를 이해하기 어려워."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고, 늘 어떤 말들로 나를 설명하고자 했다. 나의 이야기를 잘한다고 해서 나를 더 잘 안다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나를 잘 몰라서, 알고 싶어서, 알아줬으면 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말들을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들만큼,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았다. 사람들이 왜 끔찍한 영화를 그렇게 잘도 보는지, 왜 나를 감정적이라고 하는지,왜 늘 자신들보다 부족한 존재로 여기는지, 왜 위로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지, 왜 내가 필요할 땐 옆에 있어주지 않는지, 왜 내가 원하는 형태 또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공감과 위로를 해주지 않는지 등등.
평생 나에 대한 이해를 찾아 헤맸지만, 그동안 나에게서도 남에게서도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게 됐고, 이후 나처럼 이 영화 덕후였던 지인을 통해 'hyper-empath'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조부 투파키'는 멀티버스의 세계에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을 경험하고 너무 많은 감정을 느낀 나머지,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져 이런 자신을 구원해 줄 존재를 찾는 것과 동시에 완전한 소멸을 갈망하게 된 인물이다. 이를 연기한 배우 '스테파니 수'는 처음에 이 캐릭터를 구축해나갈 때 옥타비아 버틀러의 저서에서 나오는 'hyper-empath'라는 개념을 가져왔다고 한다. 아래는 그 내용이 담긴, 스테파니 수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Hsu says, “I channeled into the idea of Joy being a ‘hyper empath.’ It’s a term used by Octavia Butler in one of her books that means someone who feels so much that they absorb every bit of news they read, every homeless person on the street — it completely swallows them. I wanted Joy to feel overwhelmed by the chaos of the world.”
그리고검색하다가우연히 알게 돼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나온 'hyper-empath'에 대한 정의이다.
저마다 수준은 달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민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초민감자는 세상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는 감정의 스펀지입니다. 우리 초민감자들은 때때로 모든 것을 지나칠 정도로 감지하며, 타인과 나 사이를 막아주는 방어벽이 아주 낮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과도한 자극을 받아 압도되고, 기진맥진하거나 감정의 과부하에 걸리기 쉽죠.
[출처] 책, 주디스 올로프 저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p15 중에서
예전에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아'라는 책에서였나. '정신적 과잉 활동자'라는 명칭을 접한 적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초공감', '공감 과잉'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위 세 가지 정의에 덧붙여 나는 'hyper emath'란 [남에게 넘치는 공감을 하고 나에게 부족한 위로를 받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막연히 남들의 말을 통해, 나는 남들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사람이구나 정도로 나를 이해하고 있었는데. 'hyper empath'라는 개념은 그동안 나조차도 설명하기 힘들었던 내 자아의 정체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말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나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이었다. 나는 불가능한 것 ㅡ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ㅡ 중에서도 더 불가능한 것 ㅡ'hyper-empth'인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온전히 이해받는 것ㅡ 을 바라고,그것이 채워지길 바라왔기 때문에더없이 공허했던 거였다.
나는 이렇게나 남에게 이해받고 위로받기 쉽지 않은 나의 본체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살면서 느끼는 위로들을 더욱 귀하게더 크게 느끼고, 나를 위해서 그러한 것들을 최대한 더 많이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크게 위로받았던 두 가지를 공유하려 한다. 바로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손석구 배우님과 박은빈 배우님이 출연해서 한 이야기이다.
1. 손석구, "내 자아를 찾는 데에 엄청난 시간을 들였던 것 같아요. 그런 노력을 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기특해요."
2. 박은빈, "(타인의 이야기나 시선이) 이해가 안 되면 이해를 안 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걸. 항상 뭔가 이해하고 싶어서 저를 탓하는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손석구 배우님의 이야기를 통해, 자아를 찾는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박은빈 배우님의 이야기를 통해, 무분별한 타인의 말들과 시선 속에서 나를 지키려면, 그저 남을 이해하기 위해 쉽게 내 탓을 하며 그들의 희생양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해를 안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지금 읽고는 있는 책(나는 초민감자입니다)에서도 말하듯, 'hyper-empath'들은 감각의 과부하로 인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잠식되기 쉽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기억하는 'hyper-empath'에게 삶에서 좋은 경험, 좋은 기억, 좋은 감정들을 더 많이 채우는 일은 단순히 행복한 삶의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이며 삶의 필요조건이다.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지만'hyper-empath'에게 유독 어려운 일들,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는 않은 일들.
영화 에에올처럼, 'hyper-empath'를 긍정하는 어느 책처럼, 위의 배우님들의 인터뷰 내용처럼, 나는 이렇게 나를 위한 좋은 말들, 좋은 생각들을 차곡차곡 수집하고 쌓아나가면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보이는 곳에서도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리라 믿으면서, 내 자아와 영혼을 더 튼튼하게 가꿔나갈 것이다.
그동안은 내가 몇 번이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실패했는지만 곱씹으며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내가 몇 번이고 일어나는지 그 숫자를 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