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부정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세상
제가 다른 분들께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상상 그 이상으로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이 부정적인 마음을 혐오하며 살았고 그러다 보니 제 자신도 싫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만히 제 마음을 들여다봤을 때, 저는 어쩌면 이 부정적인 마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것, 낙천적인 것들만 숭배받는 세상에서, 부정적인 마음은 외면받고 때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그저 타인을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감정에 불과하다고 여겨지지요.
하지만 사람이 진짜 세상의 끝, 삶의 밑바닥까지 다다랐을 땐 가질 수 있는 게 많지 않거든요.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그것뿐인데 그것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혼자만의 생각에 잠식되어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약에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라는 걸 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부정적일 때는 꼭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요.
우리는 남의 감정을 알아주는 게 귀찮고 힘들어서 외면하고, 어느 새부턴가는 타인의 넘치는 감정을 혐오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았을 때, 열심을 다한 일들이 전부 잘 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있어 큰 존재를 잃었을 때, 그런 일들이 인생에서 계속 쌓여왔을 때 사람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그럴 때 긍정적인 게 더 이상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왜 너는 이렇게 부정적이게 생각하냐고 타박하지 말고, 왜 그렇게 됐는지 한번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사소한 다정함이 장차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거든요.
부정적인 마음을 스스로 긍정하기는 어려워도 누군가의 인정이 있으면 그 마음도 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인정은 긍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긍정보다는 구체적이고 다정한 공감이지요. 껍데기 안에 알맹이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개인에게 부담 지우고, 내 자존감도 내 상처도 전부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아주 사소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타인에 대한 다정함이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부정주의도 인정받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긍정에 대한 인정은 보이는 세상을 바꾸지만, 부정에 대한 인정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