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말고 현대사회에도 피리 부는 사나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나이는 꽤나 몸집이 크다. 그는 개개인의 다양한 가치, 만족감, 가능성, 잠재력, 자아성찰, 현실세계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 등을 유인해다가 동굴 안에 전부 집어 넣어 놓고, 그들이 끊임없이 동굴 밖의 것을 추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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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참으로 기이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 타인이나 권력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는 세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발적으로 그것들에 개인의 자유를 기꺼이 내놓는 세대라는 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독립성, 자율성의 측면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MBTI검사를 하면 나오는, 서로 상반되는 성향이 한 사람 안에서 차지하는 비율처럼 ㅡ 예를 들어 같은 I(내향형)이더라도 누구는 그 I 비율이 51%이고 E(외향형)는 49%,다른 누구는 I가 85% E가 15% 이런식으로 나오는 것 ㅡ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에도 분명히 서로 상반되는 타율과 자율의 퍼센테이지 비율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외부로부터 영향받은 대로 타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외부에서 영향받은 것과 자신의 생각을 종합판단하여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한 선택 이전에 무언가에 영향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많은 것은 대개 우리가 주로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곳으로부터 온다. 유튜브를 많이 보는 사람은 유튜브로부터, 인스타를 많이 보는 사람은 인스타로부터, 뉴스를 많이 보는 사람은 뉴스로부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책으로부터. 우리는 일상의 상당부분을 시각매체에 의존하고 있고, 이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을 좌우하고 있다.
나는 요즘 너나할 것 없이 유튜브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든 산업이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만 같아 사실 무섭다. 현대 산업의 홍보와 마케팅전반이 유튜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시장 속 판매자와 소비자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네모 안을 쳐다보거나 채우는 일이 된다. 누군가는 코로나 시국으로 이런 생활이 더할나위없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은분명 보이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개인의 인정욕구나 관계욕구 등을 채워주는데,바로 이게 문제다. 보이는 측면에서만 채워진다는 것. 우리가 초연결시대에 살면서도 개개인이 점점 더 외로워지고 공허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보이는 측면에서 채워진다는 것은 나 자신을 타자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보여주는 어떤 모습이 나라고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고의 기저에서는 분명히 어떠한 부정이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될수록 개개인은 건강한 자존감을 보존하기가 어려워진다.
일종의 미디어가스라이팅이라고도 볼 수 있는, 지속적이고 꾸준한세뇌로 인해, 우리는 분명히 우리를 일정 해치고 있는 타인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신격화하고 추앙하고 추구하고자 한다.이렇게타인의 욕구와 욕망을 흡수하고 소비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어떠한 판단이나 종합적인 선택이 부재할 때, 우리는 쉽게 스스로 타자가 되거나 적극적으로 타인을 사물화한다.
사회가 미디어가스라이팅으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의 타자화, 타인의 사물화 문제에 대한 성찰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대로 다음 세대로 전이·확장되고 있다. 최근에 내가 독서토론동아리에서 발제했던 2022 신간 책 <밀레니얼 실험실>에는 1. 남자아이들의 여혐 문제와 2.여자아이들 사이 프로 아나(음식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병적 증상인 거식증을 옹호하고, 이를 동경하는 사람) 유행 문제가 나온다. 이 내용은 반성과 성찰이 부재한 사회가 청소년들을 정신적·육체적으로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초등학교 교사인 조은선 씨는 어머니 욕은 여성 혐오 표현의 하나라며 "초등 1학년 아이들도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보'자가 들어간 단어 등 일일이 지적하기도 힘든 여혐 표현을 사용해요."라고 했다.
(...) 서울 서대문구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3학년 박모 군은 "기분 나쁘게 하려고 친구 엄마의 이름을 부르기도 해요."라고 했다. 학교 생활기록부나 친구가 들고 다니는 체크카드를 보고 친구 엄마의 이름을 알아낸다고.
(...) 학생들은 '씨X' '돌대가리' 등 기존에 쓰던 욕을 말하기도 했지만 '응, 니 며느리' 'SLD(생리대)나 챙겨라.' 등 낯선 표현도 말해주었다.
(...) 이를 두고 초등학교 교사인 김수진 씨는 학생들이 '해맑은 차별'을 한다고 표현했다. 혐오나 차별을 무비판적으로 배우고 사용한다는 의미였다. 안양시에 사는 고등학생 김모 양은 여성비하 발언을 하루도 안 들은 날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김대유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는 어린 시절 접하는 비하 표현은 그 영향력이 어른에게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크다고 했다. 김 교수는 남학생에게 '여혐'은 또래 집단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수단이며, 여학생은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니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심리적 지장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물에 타 마시는 발포 비타민이랑 게맛살 한 개만 먹죠. 배고픈 느낌은 3일 정도면 없어져서 금방 적응돼요." 트위터에서 만난 중학생 A양이 들려준 하루 식단이다. 몸무게가 40킬로그램 중반인 A양은 38킬로그램을 목표로 살을 빼고 있는 프로아나였다.
(...) 트위터에서 '프로 아나'를 검색하면 깡마른 허리를 드러낸 아이돌 가수들의 사진과 영상이 쏟아진다. 간혹 자기 사진을 올리며 허벅지 살 빼는 운동 좀 추천해달라거나 먹토(음식을 먹고 억지로 토하기) 방법을 알려달라는 계정도 있다.
(...) 대중매체 속 아이돌의 가냘픈 몸매는 프로아나에겐 '다이어트 자극 짤'이다. A양은 "키는 큰데 몸무게는 나랑 비슷한 남자 아이돌 가수 사진을 보며 '굶어야겠다'고 다짐해요. 남들 눈에 날씬하게 보이려면 그 정도의 체형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단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돌 체중 감량은 프로아나 사이에선 '비법'으로 통하기도 한다.한 인기 걸그룹 멤버는 연습생 시절 일주일에 7킬로그램을 빼기 위해 얼음 하나만 먹고 버텼다고 털어놨다.
(...)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이어트로 시작된 섭식장애가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오상우 동국대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섭식장애가 지속되면 생리불순이나 골다공증, 난임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마른 사람을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눈 때문에 거식증이 만연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조회수를 높이고 이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들 속에 깊은 성찰이나 반성이 담겨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새롭지 않은, 질적으로 낮은 정보들이 미디어콘텐츠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무분별하게 전파되면서 국민들의 평균적인 의식 수준을 퇴행시키고 있다. 청소년들을 보호해 줄 사회적 필터(교육)가 부재하기에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낳는 문제들을 청소년들이 그대로 흡수하고(남자아이들의 여혐 문제와 여자아이들 사이 프로 아나 유행 문제 등)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안 좋다. 미디어는 교육매체나 교육수단은 될 수는 있어도 교육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는데, 이러한 시대의 흐름이 안타깝다. 미디어가 점점 교육의 자리까지 점령하는 것 같다. 도대체 이러한 미디어의 홍수 속에 이를 비판적, 선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눈은 누가 도맡아 길러준단 말인가. 현대 사회의 모습은 마치 조별 발표하는 PPT에 글자는 없고 온통 동영상만 담겨 있는 모습만 같다. 남의 것만이 넘치는.
책에는 한국형 히키코모리 문제도 나와있는데,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책의 다음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1년 10월에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18~34세의 국내 은둔형 외톨이를 추산하면 약 37만 명 정도다.
(...) 20년간 은둔형 외톨이 300여 명을 진료해온 여인중 동남정신과의원 원장은 대인기피증, 우울증, 조현병, 사회적인 좌절 등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원인은 수백, 수천 가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3개월 이상 밖에 나오지 않으면서, 경제 생산성이 없고, 방 안에 갇혀 있는 걸 괴로워할 경우 은둔형 외톨이로 진단한다고 한다. 원인은 다르지만 '사회와 단절'된 채 이를 괴로워하는 이들'이라고 여 원장은 설명했다.
(...) K2인터네셔너코리아가 상담한 국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통계를 보면 은둔 기간이 10년 이상인 사람이 전체 약 30퍼센트였다. 코보리 대표는 이 숫자가 한 번 좌절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왜 방 안에 들어가게 되었고, 왜 나오지 못했을까.
나는 지금 이직을 준비하면서 한 달가량 집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을 지속 중이다. 그래서 히키코모리와 다름없는데 그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보자면, 과도한 입력은 있는데 출력은 없는 상태랄까. 여기서 과도한 입력은 미디어, SNS 매체를 말한다.
요즘에는 머리를 쓰거나 땀을 흘리는 노동의 가치보다 금수저의 가치, 명품 엠배서더의 가치, AI 같은 완벽한 생김새의 가치,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연애와 결혼, 인간관계 등이 추앙받는 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든, 자기 스스로에게든 이러한 시대의 파도타기에서 한번 주춤하고 소외되면 앞서 말한 것들이 만연한 일상으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히키코모리 입장에서는 밖을 내다보면 죄다 그런 것뿐이다. 내가 끼어들 수 없는 세상.
미디어가 주는 그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마케팅의 일환으로써 작용하는데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내면을 파괴한다.미디어라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개인의 고유성'만 동굴에 가둬놓는 게 아니라 '개인 그 자체'를 가두기도 한다. 지금 취업을 준비하느라 친구를 못 만날 수도 있고, 자기계발을 위해 내돈내산으로 투자하여 현재 돈이 없을 수도 있고, 사는 게 바빠 연애나 결혼을 못할 수도 있고, 명품이 아니어도 내 눈에 예쁘거나 나와 잘 어울리는 가방이나 옷이 있을 수 있으며, 마르거나 이목구비가 선명하지 않아도 매력이 있을 수 있고 좋은 인상일 수 있다. 그러나지금, 현재 내 모습에 대한 개개인의 인정과 긍정 그 성숙함과 기특함에 대해서도, 미디어는 은근하고도 교묘한 목소리로 그건 가지지 못한 자들의 자기합리화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가진 게 없을수록 긍정적이어야 성공한다 말하면서 동시에 가진 게 없다면 긍정적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이렇게 긍정의 가치가 찬송받으면서 동시에 우롱 받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는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할 때 꼭 전쟁터에 나가서 싸워야만 전사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 망나니 칼춤 같은 사고방식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전사와 다름없다. 그 말인즉슨 우리의 생은 우리가 투쟁하여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세상이 보여주는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과 볼 수 없는 게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안전한 일상의 소중함, 무사히 지나간 오늘 하루의 소중함, 내 땀과 노력의 소중함, 친구 한 명 한 명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내 기호와 자율적인 선택의 소중함 등등 말이다. 무방비 상태의 개인은 이 시대에 무력하게 현혹되고 선동되기 쉽다. 완전한 자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애초에 뭐든지 완전하지 않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우리는 무언가를 지향하고 추구하고 나아갈 수 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우리는 그대로 흡수하거나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판단이라는 자율소화작용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를 해 주고 싶다. 선택을 내리고 행동을 할 때, 이 시대에 대한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반성과 성찰을 거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책임뿐만 아니라 함께 우리가 사는 곳을 더욱 살만한 곳으로 이끌어 가는 책임이 있다. 모든 것이 순환되어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번 모든 선택이나 행동을 잘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기준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찾으려는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고, 그러한 개개인의 노력 끝에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직접 행동할 때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뻔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새로운 얘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지인의 추천으로 '북적북적'이라는 독서 기록 어플을 시작했는데, 완독한 책을 한 권씩 쌓아가는 시각적 재미가 있어서 추천하려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지인이나 친구끼리 선의의 경쟁구도(?)로 사용해도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작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약 두 달간 읽은 책을 북적북적 어플에 쌓아올린 모습을 공유하며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