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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Feb 27. 2023

잔잔하지 못한 바다

뭐든지 멀리서 볼 때는 잔잔하게 보인다. 바다도 그렇다. 실은 미세한 물결이 그 온몸을 이룰지라도 멀리서 보면 잔잔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다. 바다는 한 번도 잔잔했던 적이 없으니. 그렇게 보고 싶고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 이 세상에는 없는 '잔잔한' 바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적었던 시 중에서  '잔잔한 바다'라는 시가 있다. 이 시에는 내 안에 존재하는 모순된 마음에 대한 이야기 담겨 있다.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낼 때 엉망진창인 내 속을 가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다른 한편으로는 들키고 싶어 하고, 누군가 이 속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 나를, 내 감정을, 내 생각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쏟아내면서 한 편으로 거짓말을 괴로워하고 그만두고 싶어 는 마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사는 게 편하다고 자기세뇌를 하는 마음. 모든 일, 모든 관계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마음.] 이 담겨 있다.


내 마음이 이토록 조각조각 나 있었던 이유는 사실 아무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모습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도, 타인이 나를 대하는 방식도 전부 다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그러나 내 분노는 무력했고, 나는 화풀이를 하듯이 그 모든 것들을 꾹꾹 눌러 담아 시를 썼다. 내 시들 오롯이 나의 분노로 피워낸 꽃들이었다.


그런 나를 꺾어 놓은 건, 다름 아닌 내가 사는 현실에 대한 직시였다. 내가 가진 특성, 내가 반복해서 겪는 일과 인간관계의 문제에 대한 직시. 그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면 그 이전과 다른 선택이 필요했다. 문제가 되는 일과 인간관계들로부터 도망가는 게 익숙한 내가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 선택지를 골라야 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기 위 기존에 갖고 있던 논리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인정'하는 것 통해 현되었다.


우선 매일매일이 내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기로 했다. 또한, 사랑받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며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필요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시간은 그저 버티고 견디면서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 인정하기로 했다.


이 모든 생각을 올해 1월에 했다. 정말 괴롭고, 시간이 가지 않았던 1월이었다. 노래를 아무리 크게 틀어놔도 안 좋은 기억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이라는 것이 갱신되지 않길 바라며 살아왔건만 현실의 행은 늘 새롭게 갱신되었고 질리도록 새롭게 힘들었던 1월이었다.


누가 나를 알아준다는 게 이제는 정말 공허하다. 그리고 이런 말을 또 하고 있는 스스로가 많이 지겹다. 냉소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이기도 한 건, 아무도 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안다'라는 게 허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 정도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가 바닥을 쳐 본 적 없었다. 늘 투덜거리면서도 어느 정도는 원했고 필요로 했는데, 스스로 납득을 못 시켜 왔던 것들이 납득이 되어 버렸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니, 내 그릇에 그간의 계들이 과했다는 것을.


나는 2월에 인스타를 탈퇴하고, 모든 단톡방을 나오 내 그릇에 넘치던 타인의 시선한꺼번에 제거했다. 그러고 나서 어색한 자유로움과 때 묻은 명랑함을 느꼈다. 아무도 나를 몰랐다면 내가 했을 선택이 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타인을 의식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분수에 맞지 않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욕심내고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이 더 이상 내게 슬프지 않은 것도  수 있었다.


벌써 2월이 다 끝나가지만 나는 아직 올해 목표가 없다. 그저 충실히 돈을 벌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차근차근 답을 해보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있는 것 그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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