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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Mar 12. 2023

가보지 않아도 뻔하게 해로운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

가치관에 대하여

인간의 내면은 꽤나 복잡하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규정을 통해 확신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한다. 한창 뜨거웠던 엠비티아이 열풍도 그러한 노력 중에 하나였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흑백논리를 경멸하면서도 타인을 T(이성)형 인간, F(감정)형 인간으로 편리하게 구분 짓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가지 유형은 딱 잘라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믿을 게 못되고, 이성은 감정이 있는 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인간은 그러한 감정과 이성의 줄다리기 끝에 단지 필요에 의한 어떠한 선택을 내릴 뿐이다. 애초에 둘 중 하나는 많게 다른 하나는 적게 가지고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면 필시 그동안 하나가 과대평가되어 왔거나 다른 하나가 평가절하되어 왔을 것이다.


최근에 한 친구가 힘든 회사생활을 겪고서 성격이 크게 바뀌었는데 그 변화 과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말이 없던 친구가 말이 많아지고, 자신의 이야기도 잘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낼 뿐만 아니라 남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고 보니  친구는 말이 없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친구였던 게 아니라, 그저 그동안은 공감이 필요하지 않아서 공감하지 않았던 것이고, 할 말이 없어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던 것뿐이. 새로운 필요에 대한 새로운 선택이 이 친구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인간믿 게 못 된다는 이야기는 여기에 있다. 다른 상황에서 똑같은 선택을 반복함으로써 변화하지 않을 수도 만, 요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이 어떠한 신념이나 관계를 계속해서 지킨다는 것은, 어떠한 필요가 계속해서 일치하지 않는 이상 어마어마한 정신적인 노력을 수반하는 일이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선택들을 잊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나 자신이 되었든,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되었든 무언가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무언가 지켜지고 있다면 것을 지키는 건 바로 그의 가치관다. 가치관 때로 원치 않은 역경이나 고난에 의해  삶의 방향성이 칼풍을 맞아 길을 잃어버릴지라도  살표를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힘 되어 준다. 래서 리는 평소에 가치관이라는 돌아오는 길을 차곡차곡 만들어 놔야 한다. 감정은 이성이 있는 한 지나가는 것이고, 또 이성은 감정에 흔들리기 때문. 타인뿐만이 아니라 나부터도 한 인간으로서 믿을 게 못 되기 때문. 만약 나만의 가치관 뭔지 잘 모르겠다면 그동안 해왔던 선택들을 곰이 상기 보면 된다. 어떠한 일관성이 발견된다면 그곳에는 분명 내가 원하거나 또는 원치 않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 것이.


요즘 나 자신이 목적도 없이 끝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 한 척 같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앞서 말한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무책임생각 그치는 대신에 내가 그동안 해왔던 선택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그러나 언젠가 진하게 갖고 있던 방향성, 행동, 가치관 을 떠올려봤다. 그러한 생각 끝에 나는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졌고,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어디로 갈지 모르겠는 건 인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내게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선택이나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선택들에 최소한의 성의는 표하며 살아야겠다. 가 보지 않아도 뻔하게 나에게 해롭고 나를 괴롭게 할 선택들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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