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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Jul 19. 2021

완벽주의자에게는 '괜찮다'와 '가볍게'가 필요하다.

우당탕탕 만성완벽주의 극복기(~ing)

나는 살아오는 내내 '나는 어쩌다 완벽주의자가 된 걸까' 생각하고는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이 완벽주의자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렸을 때 '괜찮다'라는 말을 잘 듣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맞벌이 부모님 그리고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오빠 밑에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또는 당연하게 혼자 알아서 하는 일이 많았다. 어렸을 땐 이런 가정환경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이 독립심을 터득한 거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완전히 틀렸다. 어린애가 일찍이부터 독립심이 있으면 안 됐다. 한창 정서적인 지지와 관심이 필요한 나이에 독립심이라는 것은 그저 정서적 결핍을 미화한 말일 뿐이었다.


나는 커갈수록 독립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누구보다 스스로를 잘 고립시키고 잘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 갔다. 사소한 일에 얽매이고 어떤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계획한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폭발할 듯이 화가 났고 슬펐고 쉽게 무기력해졌다. 무언가를 잘하고 있다가도 내가 원한 정도의 결과물이 안 될 것 같으면 쉽게 때려쳤다. 나는 어릴 적에 내가 실수를 했거나 실패를 했거나 무언가를 망쳤을 때 단 한 번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 그렇기에 나에게는 실수와 실패라는 것이 곧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실제 대부분의 일들이 그게 잘못된다 해서 내가 진짜 죽는 것도 내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살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일련의 작은 사건들이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나의 완벽주의와 강박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그것은 곧 나의 대인관계, 연애, 학업, 성취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나에게 박한 사람은 남에게도 박한 법. 특히 연애를 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고장난 부분들이 여실히 드러났고 대부분의 상대들이 그러한 내 성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엄청 기대하고 간 맛집의 음식이 정말 별로였을 때, 놀이공원에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갔던 날 알고 보니 거의 전국 초중고소풍데이였을 때, 생일선물로 받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등등. 나는 내 기대나 계획이 어긋나는 모든 것들을 못 견뎌했고 그 화풀이를 늘 상대에게 쏟아붓고는 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뭐든 새롭게 시작만 잔뜩 하고 끝을 맺지 못했다. 처음부터 비현실적으로 높은 목표치를 세워 놓고 목표와 현실의 갭을 느끼며 괴로워하다 얼마 못 가 포기하곤 했다. 인생에서 '인간관계'와 '성취' 이 두 가지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 밭을 잘 가꾸지는 못할 망정 조금이라도 관계나 일이 틀어지면 그 밭을 전부 밀어버린 것이다. 결국 남은 건 인간관계도 성취도 도 아닌, 스스로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난 나 자신뿐이었다.


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벽주의와 강박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 안에서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분명 가짜 안정감이고, 그 가짜 안정감이 삶의 전반을 뒤흔들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데도, 오로지 그 가짜 안정감에 기대어 그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남은 인생마저 애석함으로 점철되기 전에 완벽주의의 모순을 직면하고 뚫고 나와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늘 이렇게 정답을 생각하면서도 잘 안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만성완벽주의의 전환점을 얻게 되는데, 그건 다름 아닌 연인의 말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다른 사람 때문에 손해를 보는 자잘한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동시에 온라인에서 주문했던 상품들이 전부 하자가 있어서 모두 반품해야 하는 이 두 가지 상황을 겪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닌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다른 사람 때문에 손해 보는 게 매 순간 죽도록 싫었고, 내가 반품하려는 상품들을 과연 쇼핑몰에서도 하자를 인정하고 환불을 해줄까 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그때 연인은 나에게 두 가지 말을 해줬다.


1. '살면서 손해를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때로는 네가 전체(부서)를 위해 양보해야 할 때도 있는 거다.'

2. '그런 일(반품하고자 하는 상품들을 환불을 제대로 안 해주는 것)이 일어날 거란 생각을 아예 하지 마라. 그건 오로지 너 자신과의 싸움이다. 오로지 너만을 괴롭히는 일이다.'


나는 마치 기본값처럼 '나는 절대 손해를 볼 수 없다.'와 '그런데 왠지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이 두 가지 생각을 번갈아 가면서 하며 살아왔는데, 연인의 말은 그런 나의 기본값을 깨부수어 주었다. 완벽주의를 극복하려면 나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더불어 타인의 적절한 조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직도 헤어진 전 연인이 남긴 저 두 말로 내 완벽주의에 구멍을 내 숨 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저 두 말로도 커버 안 되는 일들도 많기에 꾸준히 심리 서적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충고를 듣고 있다.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 시작한 일이 있는데, 바로 춤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늘 춤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 연예계로 진로를 꿈꾸기도 했었다. 여러 사정들로 꿈에 다가서 본 적도 춤을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습관처럼 춤에 대한 영상들을 챙겨보았고, 실제로 댄서로 활동하는 친구를 보면서  부러워했다. 그동안  배우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있어 왔으나 정작 그렇게 해 본 적은 없었는데, 그건 '가볍게'가 안 되어서였다. 좋아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없어서 시작을 아예 하지 않는 어리석음이 춤에 있어 꾸준히 발동해왔던 것이다. 워낙 좋아했던 일이고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일이기에 한번 시작하면 너무 욕심이 날 것 같았고 그 욕심이 현실적으로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 뻔히 알면서 안 하고 사는 나 스스로가 너무 미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빼놓고 살면서 사는 게 재미없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영상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게 됐는데, 그건 바로 박남정이 비디오스타에 나와 자신의 딸 시은이가 속한 그룹 스테이시의 'ASAP'의 춤을 추는 영상이었다.


출처: https://youtu.be/2wVnjra7yaU


분명 누가 봐도 안무를 정확하게 추는 것도, 안무의 모든 부분을 잘 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신나게, 해맑게, 자신의 필대로 춤을 추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박남정님은 춤을 다 추고 난 뒤, 안 춘지 오래되어서 아예 안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 연습하면서 가능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걸 보면서 나라고 이제와서 시작하지 못할 것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용기가 났다. 꼭 잘 추지 않아도 내가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멋있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지속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하고 말고는 나중에 가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모든 사고방식이 완벽주의로 점철되어 있어 어떤 일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고 지레 겁먹고 시작도 전에 부담을 느끼기에 '가볍게'가 필요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작은 결핍이 왜 이렇게 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나를 고장나게 한 걸까. 극복할 게 많은 삶인 게 억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나라서, 나를 제일 잘 알아서,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거다. 다들 말을 안 하고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매 순간 각자 자신만의 무언가를 극복하며 사는 삶인 게 분명할 것이다.


앞서 말한 계기로 춤을 시작했고,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벌써 스믈스믈 욕심이 올라오고 그 욕심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매번 춤 수업 가기 전에 스스로와 싸운다. 아무 생각하지 말자고, 제발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저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겨보자고 말이다. 부디 '1년 넘게 춤추고 있는 만성 완벽주의자'라는 식의 타이틀로 춤에 대한 글을 다시 쓸 수 있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 내가 우울할 때마다 듣는 노래인데,  온갖 욕심과 온갖 생각이 드글드글 올라와 힘든 만성완벽주의자들이 들으면 일시적 특약이 따로 없다 생각해서 공유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도 몸이 무거워
그럴 때는 비워 버려 SO WHAT
쉽게 생각해 SO WHAT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비워 둬
You know 때론 때론 천천히 가도 돼
이렇게 말해봐 SO WHAT
I think we need to just take it slow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Let it go

SO WHAT - 스테이시  가사 중에서
노래링크: https://youtu.be/Mj-7u09c8FE


->  춤을 1년 동안 배우면서 깨달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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