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릿 봉산, 영도
집에서 출발한지 1시간 40여분만에 집결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가까웠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는 기본이며, 2시간이면 갈까 망설이는데 서울 경기권을 자주 다니다보니 이제는 부산에서의 1시간 넘는 거리도 많이 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행사 장소가 영도라서 꼭 가고 싶었다. 영도는 외가댁이 있는 곳이라 지금껏 수없이 다녀온 곳이다. 그러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놀아본 기억은 없다. 기껏해야 사촌 형들과 동네 골목 조금 벗어나 다녀본 정도였는데, 그 시절 영도에서 깡패들을 만나서 어릴 때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털리고 형이 맞는 것을 눈 앞에서 본 이후로 우리들은 외가댁에 가면 할어버지 댁 근처 골목을 벗어나지 않았다. 영도는 친숙과 낯섦이 공존하는 곳이었고, 단 한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본 적이 없었기에 영도를 구석구석 탐방할 수 있겠다 싶어 기대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본 덕분에 영도가 남포동이랑 가깝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1박 2일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연히 힐러혜랑님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온 소식을 보고 신청하게 되었다. 다행히 당첨되어 저렴한 가격으로 행사를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저렴한 건 둘째치고 잔잔하고 은근한 여행이 되어 더욱 좋았던 행사였다. 행사라고 생각하고 갔지만 여행이라 느끼고 돌아온 봉산마을 골목길 인사이트! 리뷰를 시작한다.
<1박>
남포역에서 내려서 부산 시내버스 6번을 타고 영도대교를 건너 봉산마을에 도착했다. 먼저 웰커밍 센터에서 출석부에 서명을 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사항과 지역의 설명을 들은 후에 간식을 받았다. 봉산마을은 봉래동의 '봉' 그리고 산복도로의 '산'을 따서 만든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봉산 마을을 이해하려면 영도에 대해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영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섬이며 일제 때 가장 먼저 개항했던 곳이자 한국 전쟁 당시에 많은 피란민이 몰린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영도는 국유지임에도 민간 집이 들어서 있는 곳이 굉장히 많다. 정신없던 북새통에 자리가 남는대로 판잣집을 짓고 살며 조금씩 보수하던 게 지금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목도 굉장히 복잡하다. 봉산 마을도 그렇다. 많던 피란민이 빠지고 도시화와 교통의 발달으로 항구로서의 명성이 점점 떨어지면서 영도에는 인구가 급감했다. 설명에 따르면 과거 30만이 넘던 인구는 이제 13만 정도로 떨어졌고 이마저도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골목길 인사이트 투어의 리트릿 봉산편도 이러한 봉산 마을을 살리기 위해 진행되는 여러 프로그램 중에 하나다. 우선 프로그램 첫번째로 무슨 전공인지 잘 듣지 못했지만 영국에서 공부하신 박사님이 해주시는 큐레이팅을 들으며 거닐었다. 사실 말이 정원이지 그냥 다양한 잡초나 꽃들 한 곳에 모아서 심어놓은 게 정원인가 싶은 외관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을 읽으셨는지 박사님이 서양의 정원과 동양의 정원은 다르다고 말씀해주셨다. 서양은 성곽 안에 기하학적이고 직선을 추구하며 잘 다듬은 자연을 정원이라 느끼며 안정적이라 생각하지만 동양은 예로부터 차경; 자연 경치를 빌리는 기법으로 경치를 감상하고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서양의 입장에서 굉장히 자연스럽고 정리안된 느낌의 동양 정원은 낯설고 무서운 느낌일 것이라고 일러 주셨다. 동양의 정원이라 생각하고 보니 집 터만한 공간에 여러 식물들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배치해 놓았구나 싶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다름아닌 잡초에 관한 설명이었다. 잡초는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그라스(grass)류와 사초류. 일조량이 생장에 많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나뉜다. 사초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고 푸릇푸릇한 볏짚을 묶어놓은 것 처럼 풍성해서 나중에 화단이나 정원을 가꾼다면 심어놓기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한 줌의 흙에는 몇십만 개의 잡초 씨앗이 있어서 우드칩과 같은 것을 깔아주지 않는다면 잡초를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도 더해주셨다.
이렇게 2시간 조금 넘게 설명을 듣고, 제공되는 숙소에 체크인 한 뒤에 조금 쉬었다가 쿠킹 클래스를 시작했다. 흔히 부산에서는 쇠미역이라 불리는 '곰피'를 활용하는 요리였다. 영도의 특산물 중에 하나라고 한다. 기장에 사는 나로서는 기장 미역이 최고인 줄 알았건만 곰피라는 쇠미역이 영도의 특산물이라니 괜한 경쟁심도 들었다. 강사님의 소개로 건강 디저트와 곰피를 활용한 요리까지 배우고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야경 투어를 진행했다. 이건 옵션이었지만 나는 영도를 구석구석 탐방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참여율이 저조했지만 덕분에 도란도란 잘 다녀올 수 있었고, 투어가 끝난 뒤에는 첫 집결지였던 웰커밍 센터에서 수다를 떨면서 이야기 나누었다. 투어는 중리 해변과 해녀촌, 해양대 내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해변과 태종대에 잠시 들렀고, 청학배수지 전망대를 다녀왔다. 많은 곳은 아니지만 거의 영도를 한바퀴 돌았고, 이 때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여러 인생을 들어볼 수 있었다. 특히나 청학배수지 전망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곳이었다. 영도에서 바라보는 부산항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같다.
<2일>
아침에 조식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제공받았다. 자꾸만 지불한 비용에 비해 과분하게 받고 대접받는 것 같아 선물을 챙겨받는 기분이었다. 둘째날의 일정은 명상이 끝이다. 명상을 끝내고 11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다. 다만 명상이 꽤 길다. 힐러 혜랑님의 명상 프로그램 참여 때문에 리트릿 봉산을 신청한 부분도 크다. 그래서 무척 기대되었다. 힐러 혜랑님의 프로그램을 2시간 넘게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게다가 크리스탈 싱잉볼과 일반 대중적인 싱잉볼 두 개 모두 체험시켜 주셔서 더욱 좋았고 간만에 편안하게 명상을 해볼 수 있었다.
명상이 처음은 아니었으며, 종종 명상을 하곤 했으나 명상과 멀어진지 2년이 조금 넘어가는 이 시점에 명상이 간절해졌다. 혼자 몇 번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고 힐러혜랑님 프로그램 참여로 많이 배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는데 그 목적이 잘 충족된 것 같았다.
명상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랬다. 명상에는 호흡이나 대상에 집중하는 집중명상과 호흡이나 특정 대상을 알아차리는 알아차림 명상이 있다. 알아차림 명상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다만 판단하여서는 안된다.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호흡이 안정되지 않다거나 얕다고 해서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호흡이 불안정하고 얕구나 하고 인정하고 계속 바라보는 것이 다다. 힐러혜랑님이 생각과 의식은 다른 것이라며 좋은 예시를 들어주셨다. 생각은 우리가 듣고 보고 경험한 것들에 의해 조건적으로 일렁이는 마음의 파도같은 것이라면 우리는 그저 그 파도를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파도와 우리를 일치시킨다고. 말그대로 파도라는 생각에 휩쓸리지 말고 관조적 태도를 가지면 내면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고 평안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명상은 무언갈 하려는 일상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위로서, 명상의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는 있으나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명상이라는 것이다. 명상은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를 현재로 데려다준다. 생각을 쉬도록 하며 몸의 리듬도 호흡과 좌우되기 때문에 호흡은 중요하다. 그래서 호흡을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는 안정에 이를 수 있다. 무언가를 고치려거나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호흡을 지켜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명상을 마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선이 가는 곳마다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 창밖의 고양이를 발견했다. 고양이는 편안하게 지붕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새삼 고양이가 지붕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즉 멈춤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쉰다는 것은 결국 멈추는 것이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배우는 것이 여행 아니겠는가. 거기다 지쳐버린 심신을 달래고 왔던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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