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픽

고르고 또 골라도 끝이 없어

by 재깅


루시는 50x50cm 정도 되는 쟁반에 그린 빈을 촥 하고 한 컵 뿌렸다. 아직 수분이 다 날아가지 않은 푸릇한 씨앗들이 쟁반 위를 구르며 소리를 냈다. 언젠가 고추밭에서 고추를 딸 때 맡아본 풋내가 코의 점막을 자극했다.


커피나무 열매는 열대의 햇빛이 키운다. 본격적으로 열매를 수확하기까지는 묘목을 심고도 2, 3년이 더 필요하다. 녹병을 포함해서 커피나무들이 걸릴 수 있는 질병은 수십가지라 지극정성으로 돌봐줘야한다.


그렇게 잘 익은 빨간 열매를 한 알 한 알 따서 물에 불린 후, 과육을 제거하고 남은 씨앗을 양지바른 곳에서 말린 것. 그게 그린 빈이다. 팥알보다는 크고 콩알보다는 작은 사이즈의 그린빈에 200도 이상의 열을 가하고 나면 그제서야 사람들에게 익숙한 커피, 즉 원두가 된다.


루시는 제법 오래 이 작업을 해 왔다. 그녀의 눈은 익숙한 듯 쟁반에 펼쳐놓은 그린빈 한 알 한 알을 빠르게 스캔하며 결점을 찾고 있었다. 손가락은 기계처럼 움직이며 결점이 있는 그린빈을 골라낸다. 결점이 있는 그린빈 한 알이 섞여 들어가면 커피 2잔의 향미를 망칠 수도 있다. 커피란 건 결국 향이 90이다. 단순하게 오미를 느끼는 입과 달리 코는 셀 수 없는 향을 구분한다. 커피에는 800가지 이상의 방향물질이 들어 있고, 고열로 향 물질을 발현한 커피는 뜨거운 물을 만나 제가 가진 향을 공기 중에 퍼뜨린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향을 음미하며 몸을 느긋하게 이완시키는 것이다. 루시는 그 순간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결점두라고 해서 다 골라내지는 않는다. 결점두의 종류는 수십 가지지만 모든 결점두가 다 향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니까. 유전자적인 결함으로 한 면이 평평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피베리는 독특한 향미 때문에 그것들만 따로 모아서 커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닿아있기만 해도 주위의 그린빈까지 오염시킨다. 가끔은 산지에서 중량을 속이려고 비슷한 크기의 돌조각을 섞기까지 한다.


그래서 로스팅 전의 이 핸드픽 작업은 필수다. 맛있는 커피를 먹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는 마땅하지. 하이퀄리티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 새카맣게 썩고, 수분이 날아가 표면이 쪼글쪼글한, 기형인 씨앗들은 루시의 손에 걸려들어 쟁반에서 열외 되었다. 고르고 또 골라도 끝이 없어. 루시는 조금 화가 났다. 짚냄새가 나는 60kg짜리 커피 마대에서 퍼올린 그린빈에는 매번 이렇게 결점두들이 섞여 있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조금 짜증이 나지만, 일을 마치면 끝엔 결국 스스로를 칭찬하게 된다. 결점두를 모두 골라낸 루시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하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커피 마대의 안 봉투와 바깥 봉투를 모두 꼼꼼하게 묶어두고 쟁반을 한쪽으로 치운다. 봉투를 그대로 열어두면 그린빈의 수분은 계속해서 증발한다. 골라낸 결점두들은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처박는다. 다시 돌아오면 미리 핸드픽 해 둔 그린빈을 정성스레 볶아서 드립으로 내려먹을 것이다.


자리를 정리한 루시는 벽장문을 열어 익숙한 손길로 서스펜더를 셔츠 위에 착용했다. 날이 족히 25cm는 돼 보이는, 지느러미처럼 물결치는 모양의 사냥칼을 한 손으로 집어 슥- 소리가 나도록 서스펜더에 달린 나이프 홀더에 꽂았다. 이제 다른 결점두들을 골라내러 갈 시간이었다. 핸드픽이 필요한 건 커피만이 아니야, 루시는 생각했다. 그것들도 그냥 두면 세상을 해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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