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나가야 해
어제까지도 분명 괜찮았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하늘이 뒤바뀐 것처럼 마음의 지지대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일 때가 있다. 상황도, 사람들도, 그걸 겪고 있는 나도 어제와 똑같은 인간인데 모든 게 그대로이고 내 마음만 바주카포를 맞은 것처럼 구멍이 뻥 뚫려버렸다. 세차게 울어대는 알람을 모른 척했다.
이런 날엔 이불 안에 푹 파묻혀 감정의 주머니를 열심히 뒤적거려 남은 동전을 탈탈 털어내 본다. 다만 몇 푼이라도 남아 있어야 오늘을 버티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 가서 라면이라도 사 먹을 돈이 있나 해진 동전지갑을 헤집는 가난한 학생처럼.
이래서야, 분위기에서 결핍이 묻어나던 10대 시절과 좀처럼 다를 바가 없다. 그땐 쉽게 숨을 수 있는 사춘기라는 고마운 단어가 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겐 사회 부적응자라는 꼬리표만 추가될 터였다. 꼬리표. 인간은 꼬리표가 전부다. 꼬리표가 붙어있으면 쉽게 판단하고, 쉽게 도매금으로 넘겨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꼬리표가 붙어있었다고, 하면서 그 탓을 하면 된다.
우울의 바닥을 뒤적거려 손에 쥔 감정의 동전들을 세본다. 하나, 둘... 이 정도면 오늘 오후까진 버티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참지 못하고 울지도 모르겠네. 오늘은 높은 곳엔 올라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 어디선가 휑 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에 뒤집어써 본다. 지금 의지할 곳은 잠이 만들어 둔, 침대 위에 남은 스스로의 체온뿐이다.
이런 생활엔 낭만이 없다. 잔고는 연명하듯 육체에 지급하는 식사를 대기도 빠듯하고, 하루치의 감정을 지불하기도 모자라다. 거기에 낭만까지 챙겼다가는 삶이 나자빠지기 딱 좋다. 어쩐지 사는 게 에베레스트라도 등반하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인다. 눈을 뜨면 보이는 거대하고 높은 설원은 나를 자꾸 인간이 아니라 하찮은 먼지로 만든다. 아무리 추위에 발버둥 쳐봐도 몇 시간 후에 동사체로 발견될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진짜 에베레스트에는 낭만이라도 있겠지.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설산을 오르는 걸까.
너만 불행하냐,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닥치고 일어나서 씻어, 우주의 먼지가 되어 갈 때마다 단호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 어느 구석에서 들린다. 스스로에게 쏘는 독한 말들도 슬슬 약발이 떨어진다. 그것들은 스테로이드처럼 효과가 큰 만큼 부작용과 내성도 컸다.
더 이상 늑장 피우다간 이번 직장도 곧 그만두게 되고 싶어 지겠지. 입사하자마자 퇴사를 꿈꾸는 내 인생이 글러먹은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쓰레기통에 처박기 전에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건지 정도는 꼼꼼하게 체크해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혹시 알아? 재활용은 되는 쓰레기일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그 지점을 건너본 사람들만이 알게 되는 아찔함. 그 아찔함이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그건 겁이라기보다는 조심성이 많아지는 것이다. 일종의 칼에 대한 공포처럼.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그 조심성으로 다른 가능성들을 두드려보고 결정을 내릴 때는 다른 이들도 존중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만약 그런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그 지점을 건너고자 한다면 말이야.
우린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모두 글로벌리더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는데, 이건 뭐 아르바이트 자리를 두고서도 물먹는 게 다반사인 현실. 이게 다 누구 잘못이야? 그런 물음을 가지는 사람도 나이브하다는 평가를 받는 세상. 분명한 건 내 잘못도 아니라는 거다. 죄가 있다면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난 거? 그런 주제에 목숨을 유지하려 든다는 거? 그걸까?
겨우 몸을 일으키면 그 후부터는 잘 기억나지 않는 습관적인 행동들이다. 고양이의 밥을 챙기고, 화장실을 비워주고, 몇 번 녀석을 쓰다듬은 다음 양치, 세수, 머리 감기, 옷 입기, 아침밥은 먹거나 말거나. 심한 운동 전에 근육을 푸는 준비운동을 하듯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근육을 준비한다. 이런 일상의 루틴들은 특히 오늘같이 무기력한 날에 도움이 된다. 일이라는 건 대부분 특정한 시간에 어딘가 나타나야만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늘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신 차릴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집 밖으로 나가려면 많은 것들을 통제해야 한다. 지하철 2호선 안의 사람들을 다 쏴 죽이고 한 껏 넓어진 출근길의 공간을 음미하고 싶은 무시무시한 본능은 꽁꽁 묶어 두어야 한다.
이제 정말 나가야 해. 짤랑짤랑, 아까 챙긴 감정의 동전들이 제발 충분하길 바라며 주머니 속 빛바랜 녀석들을 흔들어본다. 예상 밖의 일들이 없었으면 한다. 동전이 모자라면 나도 감정을 지불하기 위해 예상 밖의 일을 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로 가서 눈물이 나 짜는 걸로 끝날 수도 있지만 거슬리는 동료의 뺨이라도 갈긴다면 일이 커진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산더미인데 여섯 번째 퇴사는 안될 말이지.
밖을 나서며 돌아본 우체통엔 내 이름으로 된 공과금 지로가 쌓여 있다. 이렇게 시시하게 살 줄 알았다면 좀 더 개망나니처럼 놀았어야 했다. 조금 논 애나 개차반이었던 애나 지금 와서 보면 비슷하게 산다니까. 어쨌든 잘 못 놀아본 애나 개차반처럼 논 애나 둘 다 글로벌 리더가 될 확률은 희박한데 주로 억울해하는 건 못 놀아본 애들이다. 평범한 생활에 감사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슨 일이 생길 거라면 크게 한 탕 챙겨볼 기회였으면 했다. 손에 쥔 알량한 동전 따위 바닥에 내팽개쳐버리고 왕관을 탈취해 바다 끝까지 달려볼 수 있게. 애매하게 동전 한 두 개가 모자라서 다시 집에 걸어와야 한다면 Mot의 노래처럼 가장 높은 탑으로 가고 싶어 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