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더 이상 슬프고 외롭지 않았다

by 재깅


당신은 어린아이를 울려본 적이 있는가? 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 몰래 의심을 품어 본 적은? 그런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가, 그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어깨를 떨어 본 적은 혹시 없나?


나는 아이를 울려본 일이 있다. 명백하게 의도적으로. 아니, 사실은 그냥 충동을 제어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충동을 막을만한 장치는 나의 덜 여문 이성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여덟, 아홉 살쯤 되는 어린 날의 일이었다. 피아노 학원에 있던 나는 슬프고 지루했다. 학원 선생님이 동생의 아이-조카를 데려와 학원에 오셔서, 나의 레슨 시간에 내게 주목을 좀 덜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피아노학원 선생님은 아기의 말랑한 볼을 눌러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피아노를 치는 나의 손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그렇지 않았다면 평소처럼 내가 연습을 빼먹었다는 걸 알아챘을 테니까. 선생님이 그려준 꽃잎 하나당 연습 1번인데, 난 다섯 개의 꽃잎을 세 번 만에 칠해버린 나는 은근히 그 사실을 들키길 바라고 있었다. 레슨은 그렇게 끝나고 다시 색을 채워야 하는 새 꽃을 받았다.


나는 피아노 연습실에 작게 난 창문으로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소파에 겨우 앉아 응가만 싸고 있지만 모두가 그 앨 바라보고 입을 맞추고 귀여워한다. 오동통한 다리를 잡아보고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아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묘하고 달콤한 분유 냄새를 못 견디겠다는 듯 킁킁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리어가 아기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뭐든지 신성시되는 마법에 걸려있다. 아님 다들 무슨 주문에 걸려있던가.


그 부분의 어떤 점이 나를 화나게 한 걸까. 질투, 심술, 내가 이해하지 못할 어떤 심리적 단계를 차근차근 밟은 나의 이드가 순간 에고를 지배했을 때, 나는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는 잠깐의 틈에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기는 순했다. 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아기를 사랑하고 미움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을 테니. 경계의 빛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순진무구한 얼굴. 방금 전의 찡얼거림이 남아있는, 눈물이 살짝 맺힌 동그란 눈동자, 일렁이는 동공엔 내가 비춘다.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 특별히 예쁘거나 잘생기지도, 머리모양을 특이하게 묶거나, 달리 코가 크거나 하지도 않은. 혹여라도 미아가 된다면 몽타주를 그린다고 해도 눈에 띌 만한 특징이 없어 찾기조차 힘들 그런 아이. 바로 나.


그토록 가까이 접근했는데도, 아기는 울지 않는다. 나를 으레 자기를 귀여워해 줄 많은 인간들과 동급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너는 경계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해 아가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너를 사랑하는 건 절대 아니란다. 그러니 낯선 사람을 조심하렴.


아가의 포동포동한 다리가 보인다. 누군가 아앙 잡아먹겠다~ 하며 깨무는 시늉을 했던, 오동통한 아기의 다리. 내복 위로 손가락 하나 만한 길이의 양말이 올라와 그 짧뚱한 다리를 더욱 강조하고 있었다. 어른이 저런 다리로 정강이까지 오는 양말을 신으면 단번에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을 텐데 말이야. 아기는 안아달라는 듯 팔을 뻗고 손을 폈다 접었다 하며 '우야야' 하는 혀 짧은 소리를 몇 번 내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도 했다.


나는 지금 이곳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가만히 그 앞에 서 있었다. 예민한 사슴을 사냥하기 전처럼. 선생님은 다른 학원생이 불러서 아기를 둔 채 레슨실로 들어갔고, 다른 아이들은 연습 중이고, 내가 연습실을 빠져나와 여기 서 있는 것은 아무도 못 봤다. 레슨생들의 제멋대로인 피아노연주를 귀 기울여 들어본다. 다행이다. 학생 두 명 정도는 내가 치는 곡을 함께 치고 있다. 선생님은 분명 나도 레슨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겠지. 가슴이 두 방망이질 친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내 심장도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아주 재빠르게 포동한 양말 위로 손을 뻗어 아기의 다리를 힘껏 꼬집었다. 엄지와 검지로 확실하게. 손톱자국이 남진 않겠지만,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고 충분히 길게 울만큼 확실하게. 아기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이윽고 난생처음 다리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으아앙 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아기의 다리를 꼬집음과 동시에 지체 없이 나의 레슨방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아기 울음소리에 헐레벌떡 달려왔을 땐 나는 이미 레슨실에 앉아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으앙 으앙 서럽게 우는 아기를 선생님은 영문도 모르고 어르고 달랜다.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자 급한 대로 아기를 안아 들어 둥게둥게를 부르며 아기의 등을 토닥였다. 아기는 배고플 때와는 다른, 약간 높고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것도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할 거야.


선생님은 아기의 양말을 벗겨 벌게진 다리를 볼 생각은 못 할 것이다. 그저 잠깐 혼자 남겨진 게 서러워서,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적셔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울음은 아기의 일상이니까. 아기의 통통하고 흰 다리에 손으로 꼬집은 빨간 자국이 있을 걸 생각하니 왠지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더 이상 슬프고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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