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봉 (墳蜂, 벌무덤)

벌의 생애가 문득 사무쳐온다

by 재깅

자꾸 방 창문에 벌들이 말라죽어.


엄마는 내게 전화해서 뜬금없는 말을 했다. 밥은 잘 챙기냐는 둥, 실컷 일상적인 대화를 떠들다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뭐야, 벌들이 자살이라도 해? 그게 흉조야, 길조야, 내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물었지만 엄마는 흉조라고 생각하면 흉조고, 길조라고 생각하면 길조지 뭐,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엄마는 내게 아버지의 간암 말기 사실을 알렸다. 나는 팀장의 눈치를 보며 퇴근시간 정각에 회사를 빠져나왔다.


병원에 얼굴을 내밀어봤자 아버지는 왜 왔냐고 할 게 뻔했다. 암 말기판정을 받은 아버지에게 건넬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건 좀 심각한 부녀관계가 아닐까. 하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 긴장상태도 계속되다 보면 결국 조금 불편할 뿐이지 오히려 귀찮은 참견이나 챙겨야 할 일 들은 줄어들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애써 그 상태를 해소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휴전선이 그어진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평화. 그러니 환자를 마주쳐 봤자 오히려 더 자극하는 꼴이 될 것이다. 자극은 자칫하면 도발로 받아들여져 이 일시적인 평화도 깨질 테고 그럼 이번에야말로 파국이겠지. 엄마도 그걸 의식했는지 그냥 병원 지하에서 밥이나 먹인 후 나를 보냈다. 아버지의 문자가 온 것은 그로부터 약 2주 후였다.


- 오늘 병원으로 와라.


내 자식 아니라시며 꼴도 보기 싫다 소리치시더니. 실소가 흘러나왔지만 이내 누가 볼세라 고갤 흔들어 안면근육을 되돌린다. 나도 어딘가 고장 난 게 분명해. 하지만 회로를 열어 하나씩 점검하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일단 치명적인 하자는 없으니 대강 쓰자는 느낌으로 포기 비슷한 걸 한지는 좀 됐다. 엄마에게 병원에 들르겠다고 전화를 하니 집에서 필요한 것을 좀 챙겨 오라 신다. 퇴근 후 지옥 같은 대중교통을 누비고 다닐 자신이 없어 할 수 없이 반차를 썼다. 이 순간만큼은 지옥철보다 팀장의 짜증과 생색이 차라리 견딜 만하다. 내 선택들은 대부분 그런 식인 것 같다. 최선과 차선이 아닌 최악이냐 차악이냐에 가까운 선택. 그러니 자꾸 도망치고픈 생각뿐이다. 하지만 오래된 문장처럼, 그곳에도 낙원은 없었다.


부모님의 집 안까지 들어가는 건 거의 2년 만. 현관문의 6자리 비밀번호처럼 집 안의 냄새도 그때와 같다. 애써 집안을 둘러보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한파를 대비해 땔감을 아끼듯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줄이고 싶었다.


문득 창문에 자꾸 벌들이 말라죽는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나 창가로 갔다. 이 집은 채광이 참 좋았지. 아버지가 내 뺨을 때려 고개가 돌아갔을 때도 창을 통과한 빛이 네모난 창문모양으로 바닥에 비치고 있었다. 이 집을 나가야 해, 열여섯 살 때부터 했던 다짐을 12년이 지나서야 실행에 옮겼던 그날과 비슷한 풍경에 뇌가 퇴행을 일으킨 것 같이 정신이 멍해졌다. 창가에는 피라미드 안의 미라처럼 말라죽은 벌의 사체가 네 구나 있다.


자살 명소라고 벌들 사이에 소문이라도 난 건가. 벌들은 다른 벌들에게 먹이가 있는 곳을 알리기 위해 정교한 8 자 댄스를 춰서 먹이가 있는 방향과 거리를 나타낸다고 하던데, 자살바위가 된 이곳을 알리기 위해 그들은 어떤 춤을 추었을까 궁금해졌다. 인간이 동반자살을 할 상대를 구하듯 벌도 마지막을 함께 할 다른 벌을 불러들여 죽음의 무도회라도 열었을까.


살아 있을 땐 다른 벌들보다 큰 몸이며 턱으로 깨나 위세를 떨치며 붕붕 날아다녔을 것이다. 검색창에 장수말벌, 네 글자를 넣어본다. 학명은 Vespa mandarinia, 해석해 보면 중국에서 발견한 말벌 정도. 언젠가 친구가 알바비를 몽땅 털어 넣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장만했다며 잔뜩 신난 얼굴로 자랑하던 이탈리아산 스쿠터를 떠올렸다. 정말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걸까, 창가에 누운 벌의 시체를 한참 쳐다봐도 도무지 닮은 점을 찾을 수 없었지만 서로 같은 대상을 본다 해도 전혀 다른 경험과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10분 만에 꿀벌 10만 마리를 학살할 수 있는 곤충계의 학살자인 장수말벌은 나무수액을 먹거나 사마귀 같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독침은 최대 10mm에 가깝고 신경 독을 포함하고 있어 여러 번 쏘이면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알-애벌레-번데기과정을 거치는 완전탈바꿈을 통해 성충이 되고 유충 때는 다른 성충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고깃덩이를 받아먹으며 연명하다, 비로소 죽을힘을 다해 고치를 뚫고 나오면 그들의 임무는 사냥과 약탈이 된다. 여왕벌과의 짧은 교미가 허락되지만 모두 후세를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미가 끝난 후 여왕벌들은 다시 둥지로 돌아오지 않고 남은 벌들은 각자 도생하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들의 마지막 세대는 빈 둥지에서 아사하고 만다.


장수말벌은 죽을 때까지 먹이나 날라 여왕과 그 가족을 먹이는 것이 전부인 봉생을 비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벌의 생애가 문득 사무쳐온다. 장수말벌에 대한 백과사전 내용을 읽다 울컥하는 건 비일상적인 일처럼 보이지만 원래 벌의 장례식이라는 건 비일상적인 절차니까, 출처가 애매한 감정에게 면죄부를 줘 본다. 영전에 꽃을 바치듯 미라 같은 벌의 시체를 흰 휴지로 한 마리씩 수습한다. 창가의 강렬한 태양이 사체의 수분을 증발시킨 탓인지 바사삭, 휴지를 말아 쥔 손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다른 벌들은 침을 쏘고 나면 죽지만 말벌은 침을 넣었다 뺐다 할 수도 있다. 독침이 일회용이 아니라는 건 다른 곤충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치명적인 일일 것이다. 장수말벌에 쏘이면 뜨겁게 달궈진 못이 피부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듯 한 고통이 느껴진다고 했다. 말벌의 공포스러운 묘사가 떠오를수록 그들의 자살이유가 궁금해졌다.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다.


- 응, 엄마?

- 그래.. 집이니?

- 응. 짐 거의 다 챙겼어.

- … 아버지, 가셨어.


짧은 생애 속에서 벌들은 끊임없이 육각의 방을 만든다.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인 벌집의 모양은 어딘지 모르게 기이하다. 독립된 방을 만들지 않는 개미들이 철저한 사회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면 벌들은 좀 다른 걸까. 어쨌든, 여왕벌은 군집이 커지면 분봉(分蜂)을 한다. 한 세계에 두 개의 태양은 필요 없다는 것을 벌은 인간보다 먼저 알고 있었는지도. 다른 벌의 8자 댄스를 보고 온 건지 위협적인 날개 소리를 내며 장수말벌 한 마리가 창가로 날아든다. 쏘이기 전에 몸을 피했지만 뜨겁게 달궈진 못이 어딘가를 관통한 것 같은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 엽편 소설 공모전 수상작 입니다.


*墳蜂墳蜂, 벌무덤)墳蜂, 벌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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