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날, 육지에서.
죽기로 한 디데이 이틀 전엔 원주에 갔다. 나는 국가근로를 위해 학교에서 거주했던 작년 12월부터, 원주에 위치한 정신과를 다녔었다. 본가로 돌아온 이후에도 죽 그곳을 다녔다. 본가에서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정신과가 한 곳뿐이었는데, 처음 갔을 때 상담이 아닌 취조를 당하는듯한 불쾌한 기분이 들었기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었다. 그에 비해 원주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은 꽤 괜찮았다. 사실 굳이 죽기로 결심한 날 이틀 전에 병원을 갈 필요는 없었지만, 의사 선생님께 미리 보여준 내 소설에 대한 감상평을 듣기 위해서였다. 또한 가는 김에 마지막으로 원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자 했다.
나는 병원을 위해 원주를 갈 때마다 꼭 약속을 잡았는데, 당연히 속사정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 보니 아마도 굉장히 할 일 없는 애로 비친 듯했다.(물론 진짜로 할 일이 없긴 했다.) 막판에는 ‘얜 왜 또 왔어?’ 등의 노골적인 반응도 심심치 않게 받았다.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약속 없이 오로지 정신과를 위해서만 원주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갈 수도 없었다. 굉장히 끔찍한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원주가 싫다. 싫지만 좋기도 하고, 내게는 가장 애증 하는 도시다. 즐거웠던 추억도 셀 수 없지만, 너무 고통스럽고 고독했던 기억 또한 손에 꼽아서, 도무지 감정을 가릴 수가 없다.
아무튼 원래는 당일 치기로 돌아와서, 디데이 하루 전 날은 집에서 온종일 쉬면서 보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너무 과음을 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친구의 자취방에 기절하고 말았다. 몰랐는데 듣고 보니 필름도 일부 끊겼었다. 필름이 끊긴 건 거의 일 년 만이었다. 겪을 때마다 황당하고, 신기하고, 창피한 것이 기억의 조각을 잃어버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나 물건을 잃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하다 하다 기억까지 잃는다니. 때문에 숙취도 엄청났고, 도저히 서울까지 혼자 갈 자신이 없어서 나도 결국은 예정된 장소에 가지 않았다. 계획에 변함이 없었더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갔겠지만, 필요한 재료도 다 J에게 있었고, 무엇보다 하루 전날 밤에 J가 파투를 냈기 때문이다.
J는 내게 미안하다며,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취기에 담금 된 상태에서 그 연락을 받았는데, 그래도 쟤는 살겠다니 다행이기도 하고 버려졌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고 복잡한 심경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창피해서 자세히 적지는 않겠지만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에게 여러 가지 추태를 부린 뒤(물론 전해 들어서 알았다) 잠시 기절했다가(내가 기절했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린 뒤에, 결국 전화를 걸었다. 내가 사는 동안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1-3. 사랑했던 사람과 마지막 통화하기
다들 그런 사람 한 명쯤은 품고 있거나 품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누군가를 이처럼 사랑하지는 못하겠다 생각하며, 정말 잊는다기보다는 타임캡슐처럼 묻어둔 채 사는 사랑. 다만 차마 꼭대기까지 파묻지는 못했으니 정수리께가 선명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파낼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나는 그런 그 애에게 전화했다. 나는 참 이상하게도 유독 힘들어지는 순간마다, 사람 중에 나를 아주 힘들게 했던 그 애를 떠올리게 되었다. 줄곧 연락하고 싶었다. 죽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더 그랬다. 하지만 매번 망설임에서 그치고는 했는데 그러다 그 날, 그 순간에는 용기가 났다. 용기라기보다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사과를 전하고 싶었다. 미안해할 일들을 미안해한다고도 하고 싶었고, 잘 지내냐고도 묻고 싶었다. 여전히 나를 싫어할지도 궁금했고, 이런저런 못다 한 얘기가 참 많았다. 다 제쳐두고, 그냥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한 번만 더 대화하고 싶었다.
걔는 처음엔 받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뭐, 하며 절망하려던 찰나에 일하는 중이니 이후에 전화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슬프도록 반가웠다. 그렇게 밤 열 시쯤인가 열한 시쯤에 그리운 이름이 울렸고, 나는 친구 집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나름 작게 통화했는데 도중에 주민이 시끄럽다고 지적하는 바람에 주차장으로 쫓겨났다. 그래서 춥기도 했지만 춥지는 않았다. ) 우리는 제법 괜찮은 사이처럼 대화했던 것 같다. 근황도 묻고, 서로 미안해하고, 추억도 되새기고… 나는 당시에 하려던 말의 3분의 2 정도는 해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3분의 1도 채 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끊고 싶지 않았는데, 조금만 더 질척대고 싶었는데, 먼저 마무리한 것은 나였다. 그래야 답례 같았다. 우리는 서로 다음을 기약하지도 않았다. 나는 다음이 없었기 때문이고, 걔는 내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앞으로도 잘 지내라는 내 말에 그 애는 알겠다고 너도 잘 지내라고 답했다. 나는 그냥 웃고는 전화를 끊었다. 걔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그동안 옹골지던 마음에 흠이 난 듯 뭔가가 모래처럼 우수수 빠져나갔다. 허해진 곳으로 헛헛한 바람이 불어서, 더욱 슬퍼졌던 것 같다.
실은 몇 년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다. 나는 죽으려고 옥상에 가서 그 애에게 전화했고, 걔는 내게 보란 듯이 잘 살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왜 죽고 싶은지에 대해 설명하던 내게 그 애가 해준 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는 하면 안 된다는 발언의 모음집과 다름없었지만, 그 세세한 내용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살아가라고 진심을 다해 말해줬다는 진실 하나만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살았었다. 이번에도 어쩌면, 한편으로는 그 날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우선은 그 애를 또다시 사랑하고 싶었다. 그 뒤에 나는 여전히 죽고 싶다고, 내 삶이 너무 밉고 외롭다고, 투정하는 척 빌고 싶었다. 그 애가 살라고 말해준다면, 그 말을 붙잡고 살아내고 싶었다.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 아일 다시금 사랑할 수 있었고, 걔는 참 모질지 못한 애여서 조금 귀찮더라도 꽤 정성을 담아 다독여줄 거였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너무 이기적이었고, 더는 타인에게 기생하여 연명하기 싫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기생하는 삶이란 숙주를 잃거나 숙주에게 버려지는 순간 처절한 지옥이 되기에, 내가 처음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빠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