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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요한 연 May 11. 2021

오늘의 날씨는 흐림과 강풍을 동반

일기


요새는 다른 글을 줄곧 쓰느라 너무 바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엔 소홀해진 것 같아서 이곳에도 어서 글을 쓰고 싶기는 한데, 시리즈를 이어 쓰자니 별로 안 당기고 그 밖에도 딱히 쓸 게 없어서 쓰는 그냥 일기다. 최근 새벽에 너무 우울해서 무슨 이상한 글을 쓰려한 거 같은데 막상 글도 잘 안 써지길래 도중에 그냥 관두고 약이나 먹고 잤다. 이런 시간에는 단순히 내 생각을 받아 적기만 하는 건데도 힘에 부치는 것 같다.


요즘 우도 날씨는 좀 구리다. 어제까지가 맑음의 막바지였고, 오늘부터는 한동안 바람이 거세고 비가 드문드문 내린다고. 내일 동생이 오기로 했는데, 사장님 피셜에 의하면 내일은 배가 아예 안 뜰 수도 있단다. 갸륵한 내 동생..... 그보다는 걔한테 부탁한 내 짐이 조금 있는데, 이대로 수령을 못한다면 좀 안타까울 듯.


계란 김밥은 그냥 계란말이에 밥을 쑤셔넣은 맛이고, 떡볶이는 초딩때 학교 앞 포장마차서 팔던 500-1000원짜리 컵볶이랑 맛이 똑같은데 이걸 무슨 4000원에 판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아, 글렀구나.'라는 신호가 왔다. 여기는 바람이 거세지면 창밖에서 되게 요란한 소리가 나는데, 뭐라 설명할 수는 없고 그냥 요란함 그 자체다. 여객선에 전화해보니 오후 네시까지는 배가 운행한단다. 엥 하긴 하네. 아무튼 그래서 J와(잠시 놀러 왔다) 어디를 갈지 상의했다. 기존엔 날씨가 영 아닌 관계로 근처의 짬뽕 맛집을 가려했는데, 갑자기 문을 닫았지 뭔가. 역시 개 트롤 섬 우도답게 늘 제멋대로 문을 닫는다. 그래서 또 다른 근처의 백반집에 갔다. 날마다 메뉴가 바뀐다고 들었어서 구성이 괜찮으면 먹고 아니면 말 생각으로 오늘의 메뉴에 대해 물었는데, 직원이 아니 웬 걸 너무 띠껍.... 불친절하신 거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나는 아주 상냥하고 해맑게 물었다. 저 근데 오늘 메뉴는 뭔가요??٩(๑๑)۶ ٩(๑๑)۶(이거 원래 되게 귀여운 이모 진데 여기서 쓰니 눈알이 맛이 간 거 같다.) 대충 이랬는데 내가 무슨 프라이드라도 건드린 건지 몹시 불쾌한 사람처럼 혼자 뭐라 중얼거리시던데, 대충 '아니 뭐 맛없는 거면 안 먹고 맛있는 거면 먹게요?' 이런 내용이었다. 그럼 당연한 거 아닌가??ㅋㅋㅋㅋㅋ풀떼기면 왜 먹냐고.... 졸지에 진상 취급당한 듯. 아무튼 반찬이 뭐든 간에 기분이 너무 불쾌해져서 여기는 그냥 스루 하고, 바람이 아까보단 잠잠해진 듯하여 결국은 15분 걸어서 J의 먹킷 리스트 중에 하나였던 해물라면+참치김밥 집에 갔다. 사진은 어제 먹은 떡볶인데 라면은 안 찍었길래 이거라도 첨부함. 나는 문어라면, 쟤는 전복라면을 주문했다. 걸어온 보람 있는 식사였다. 역시 라면에 참김 조합은 국룰이다.


어제 간 가정식집에서 본 감성글귀. 이게 그래도 양반이었다. 나머지는 좀...과연 될 수 있으려나? 나락은 되던데

그러고는 드디어 고대했던 짜글이 집에 갔다. (근데 또 사진을 안 찍었길래 저거라도.) 내가 눈여겨보던 곳이었는데 애석하게도 2인분 이상 주문이라 친구가 오면 데려가려고 벼르고 있었다. 원래는 어제 가려했는데, 전화하니 사장님이 육지를 가셔서 내일 연 댄다. 하여간 여기 분들은 틈만 나면 육지로 나들이를 가신다. 그래서 오늘 점심에 가려고 또 전화했는데(개 트롤 섬이라 선전화가 필수다) 세시 이후에 연다고. 그래서 네시쯤에 다시 전화했는데 처음엔 오늘 안 연다고 하시려던 거 같았는데, 내가 개빡쳐보임+우도 주민이라 하니까 마음을 고쳐먹으셨는지 다섯 시에 연대서 그때 드디어 갔다. 진짜 힘들게 갔네.


그런데 여기서 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나는 미주가라 맛있는 술을 지향하는데, 대충 소주에 꼭 뭔가를 섞어마셔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 냉장고에 난생 첨 보는 음료수가 있길래 뭐냐니깐 추천해주셔서, 그거랑 소주를 타마셨다. 근데 꽤 맛있는 거다. 약간 게토레이와 탄산수를 섞은 맛? 그래서 J가 칭찬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등장하셔서 구매처를 알려주시며 막 홍보를 하는 거다. 근데 이건 딱 봐도 다단계였다. 실제로 업체명 검색하니 다단계던데 나는 소속이 아니니까 굳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다. 그래서 대충 다음에 사겠다는 식으로 넘기고 그 이후로는 무서워서 저 음료는 못 시켰다. 그런데 진짜 웃겼던 건.... 나는 색깔 있는 뭔가를 먹을 때마다 옷으로 먹는지 항상 옷에다가 흔적을 남기는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미처 몰랐는데 중간에 더워서 벗어둔 내 신상 후드티 팔인지 등짝인지에 짜글이 국물로 범벅이 돼있는 거다. 드문드문 그랬는데 저마다 상태가 많이 심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먹었길래.... 그래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난감한지 한 3초 만에 사장님이 용수철같이 튀어나오셔서는 뭔 희한한 스프레이를 내 옷에 마구마구 뿌리시면서 이것 또한 업체서 나온 제품인데 효과가 직빵이라면서 2차 홍보를 갈기셨다. 이 정도면 사장님이 일부러 더럽혀 놓았던 게 아닌지 의심 갈 정도로.... 상황 자체도 웃기고 사장님이 너무 열성적이셔서 하마터면 웃을 뻔했는데 열심히 웃참했다.... 그러고는 서비스까지 주시면서 우리에게도 가입을 권유(와 강요의 어딘가)를 하셨는데 J가 대충 다음에 또 와서 하겠다며 모면했다. 아무래도 이제 두 번 다시 못 갈 것 같다...... 안주는 나름 맛있었는데 아쉽네....ㅎㅎ


이것도 어제.

아무튼 그러고 숙소로 힘겹게 돌아왔다. 원래는 위장 상태가 괜찮으면 편술이나 하려고 했는데, J가 피곤하다며 자는 중이라 무산됐다. 얘는 그런데 맨날 잔다. 어제도 그렇고 엊그제도 그랬던 듯. 그렇다고 나무라는 건 아니고 보기 좋아서 하는 말이다. 오히려 좋아...



나름 다사다난하고 돼지   하루였다. 내일 과연 배가 무사히 뜰지,  동생이 이곳에   있을지 궁금하다. 사실 별로  궁금하다. 오면 오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기 때문에.... 그래도  동생의 입장을 생각하면 오는 편이 훨씬 좋긴 하겠지만.


요새는 종종 전혀 예상치 못한 친구들에게서 안부 연락이 오는데, 하나같이 무슨 일 있냐며 걱정하는 투라 졸지에 내가 개트롤이 된 듯해서 좀 곤혹스럽다. 너무 잠수를 오래 탔나....? 는 한 달 밖에 안 됐고 앞으로 최소 두 달은 더 타고 싶은데. 이러고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아무튼 그래도 나를 찾아준다는 것 자체는 고마운 일이긴 하다. 그런데 이건 또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한담.... 하루빨리 날씨가 개었으면 좋겠다. 맑은 하늘과 선명한 바다가 그립다. 못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도 매일 보고싶다. 마치 초창기의 연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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