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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요한 연 Apr 17. 2021

1.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전날, 육지에서.


  죽어야겠다, 벌써 이십 대 중반이다. 나는 내가 너무 오래 살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시작하면 어떤 형태로든 이별하기 마련이고, 뭐든 기대하는 만큼 실망으로 돌아오는 일은 익숙하다. 인생은 이처럼 살아갈수록 불행해질 게 뻔한데, 잠시 행복할수록 방심하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이순신 장군마저 패배하게 만든 것이 찰나의 방심 아니었나. 그토록 훌륭하고 위대한 위인도 감히 피해 가지 못했던 게 방심인데, 고작 나 같은 게 완전히 대비하거나 무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한 살이라도 더 어렸을 때 죽었어야 했는데, 적어도 그때 더 일찍 죽었더라면, 지금에 와서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틈만 나면 그런 생각을 하며, 차마 죽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네가 좀 더 일찍 나를 포기해줬더라면, 이후의 나는 평생이 괜찮았을 텐데. 생이란 게 없으니까.     


   그러면 이것은 생존의 수록일까, 죽기 전의 회고일까.   

       

여기에 홀로 누우면 모든 별을 다 잃었다

 

  1-1.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이렇게까지 쓰러지고 헤지기는 전에, 한 친구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무려 이년만에 재회한 친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근 이 년간은 완전히 절연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내가 붙잡았고, 운 좋게 붙잡혔다. 언제 남이 됐냐는 듯이 변함없는 수다를 떨었고, 적당히 기름진 방어회와 담금주도 함께 마셨다. 분명 즐거워야 할 만남이었고, 실제로도 즐거웠다. 어떤 일을 겪게 되기 전까진.     

  앞서 제법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그다지 유별난 일은 아니다. 당시에 내가 정말 많이 좋아했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단절을 당했다는 정도의, 예사로운 일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겪어볼 일이고, 나 또한 이미 몇 번이나 겪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별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무뎌질 수도 없었고, 담담해질 수도 없었다. 그건 언제나 처음처럼 놀랍고, 분하고, 슬프고, 때로는 죽을 것 같았다. 갑작스러울수록 더더욱.

  

  나는 당시엔 분위기를 망칠 수 없어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사실은 정말 엉망이 되고 있었다. 마치 길을 걷다가 혈기왕성한 남학생이 무심코 차낸 축구공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 들었다. 맞은 것은 사실 마음이었고, 동그란 형태인 줄 알았던 그것은 본래 우물의 입구였다. 나는 그 날 이후 깊숙한 우물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쓰라린 일을 겪게 되면, 거기에 내 탓이 일말이라도 존재한다면, 기꺼이 우물이든 동굴이든 투신해 나 자신을 도려내고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깎아도 사라지는 것은 슬픔이나 아픔이 아닌, 나의 자신이었다.     

  다만 그때만큼은 친구가 곁에 있었기에 동굴로 완전히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상대방을 내 부정적인 감정에 엮여 들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금씩 슬픔이 새어나갔다. 미안함이 들었다. 넘치려는 감정을 내 안에만 머금어두는 일은 좀처럼 가능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새벽이 되었다. 어렴풋한 슬픔과 분명한 웃음소리가 한데 엉클어진 방 안에, 아랫 침대에 누워있는 친구가 문득 노래를 추천해 주었다. '아마자라시'라는 일본 가수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라는 곡이었다. 그건 사실 제목부터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이란 내 오래된 열망이었고, 변함없는 출구였다. 유튜브에 제목을 검색했고, 노래를 들었다. 가사가 너무 슬펐다. 내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담담하지만 절절한 구절들이 너무나도 슬펐다. 굳이 더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노래가 너무 서글프고 좋아서 하염없이 들었다. 결국에는 고작 노래 한 곡을 거듭해서 듣느라 밤을 꼬박 새워버리고 말았다. 비록 그날 밤 이후로는 그렇게까지 찾아 듣지 않았고, 한동안은 잊어버리고 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같은 노래를 꼼짝 않고 들으며 끊임없는 새벽을 지새웠던 그 공간의 온도와 색채와 감정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무더웠고, 청청했고, 한 줄로 적을 수는 없겠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의 노랫말은 화자가 죽으려고 생각한 이유에 살구꽃이 내 생일날에 피었다거나, 신발끈이 풀어졌다거나 부두에서 괭이갈매기가 울었다는 등의 사소하고도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제시한다.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실은 틀린 말도 아니다. 사람이 죽으려는 것에 꼭 거창하고 기막힌 사연이나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걸 줄곧 알고 있었지만, 어느 날 비로소 깨닫고 말았다. 정말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살구꽃이 피어서도 아니고, 사랑하는 이가 별안간 외면해서도 아니고, 미운 과거가 여전해서도 아닌, 단지 더는 살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갈수록 이상해졌다. 그건 지난 상처가 덧난 것도 같았고, 새로운 상처가 더 난 것도 같았다. 혹은 스스로가 없는 상처를 억지로 헤집어내는 것도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현실 자체가 견딜 수 없도록 싫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모조리 괴로웠다. 단순한 것이든 집요한 것이든 허무한 것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냥 내가 살아있는 게 싫었다. 이런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니. 여전히 살아있다니. 온 세포가 아우성을 지르는 것 같았고, 내 존재가 너무 끔찍하고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한시라도 빨리 모든 것들을 멈추고 끝내고 싶었다. 그건 자의라기보단 너무 힘겹고 괴로워서, 무작정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 시기의 감정을 다 적어내려면 너무 많은 종이가 필요하다. 고정적이면서도,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는 했다. 의지가 넘쳐 시도를 하다가도, 죽을힘마저 다 잃어버릴 때도 있었다. 기분이 좋아져 웃다가도 우울이 사무쳐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눈물마저 메마른 적도 길었다. 그렇지만 아무튼 간에 나는, 아마도 네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조금은 더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다만 겹겹 한 육지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었다. 나는 동떨어진 섬으로 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은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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