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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Apr 22. 2023

기꺼이 하는 것의 긍정 에너지


어떤 일이든 억지로 하게 되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특히 니 일 내 일의 구분선이 뚜렷할수록 장점도 있지만, 단점 또한 뚜렷해진다. 내 일이 아닌 것은 철저히 남의 일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일로 구분짓는 순간 그 일에 대한 대가를 바라게 되거나 돕는 것이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누군가를 돕는 일은 착한 사람이고자 하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착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 아니 뼛속부터 선한 사람으로 남을 돕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러는 거지?



발 벗고 나서는 쿼카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인 일명 쿼카를 보고 든 생각이 있다. 그녀는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며 도움 주는 것을 즐겁게 여긴다. 물론 나도 도움 주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내가 충분히 여유로운 상황일 때 한정이다.


나는 일단 귀찮은 일이 생기면 고슴도치가 된다. 몸을 사리려고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웅크리며 땅굴로 사사삭 하고 들어가버리려는 순간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잠시만요 고슴도치씨?"하고 부르는 순간 온몸에 가시를 돋운다. 고슴도치의 가시는 초점이 사라진 동공으로 나타난다.


하루는 병동에 엄청나게 많은 일이 한꺼번에 생긴 날이었다. 원래는 인턴 선생님 혼자서 해야하는 일이었지만, 사실 인턴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또 아니었다. 누구든 할 수 있지만 굳이 누구나 도울 필요는 없는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발 벗고 나서는 쿼카는 달랐다.

“언니 우리가 여기부터 저기까지 같이 하면 금방 할 수 있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같이 하면 5배는 빨리할 수 있었을 것을... 나 하나 잠깐 방구석에 드러눕겠다고 초점 풀린 동공으로 이 많은 일을 누군가 어서 빨리 해치워주길 바라며 땅굴로 들어가려던 나에게 부끄럼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들이 모인다. 여전히 동공에 초점이 풀릴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쿼카의 긍정에서 하나 배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막상 돕고 나니 나 또한 더욱 즐겁더라는 것이다. 이래서 서로 도우며 살라는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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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카가 준 엽서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스쳐가는 수많은 인연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인상 깊은 어느 한 장면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정말 힘들 때 건넨 작은 음료나 미소 한번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평생 남을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나 또한 과거를 회상해보면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감사했던 한 사람의 모습은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전체에 대한 인상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소소하고 사소한 순간들이다. 따뜻한 세상이 별 거 아니다. 문 한번 잡아주고, 밝은 미소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

머릿 속이 꽃밭...?



"어머, 여기 왜이리 예뻐? 토토로 나올 것 같아"


점심식사 후에 잠시 산책하러 나간 병원 뒷산 입구의 울창한 풀숲을 보고 쿼카가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에는 오히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우중충한 새벽 날씨를 뚫고 출근을 했는데, 병원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30시간 만에 마주한 하늘은 마법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눈부신 햇살비가 내리쬐고 건조하고 상쾌한 봄바람 향이 흩날렸다.


이런 쿼카에게 다른 친구 코크로치가 이렇게 말했다.

"누나는 정말 세상을 아름답게 본다."

 




쿼카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안경 필터를 가지고 있다면 정말 삶이 행복할까?


책 <긍정 심리학>에 나온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행복도를 결정하는 여러요인들 중 하나로 낙관성이 제시된다.

미래를 밝고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을 낙관성이라 하는데, 일종의 타고난 기질이며, 이 낙관성이 높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삶에 만족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Diener et al., 1999)


하지만 이런 낙관의 자세는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회피하고 안주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무지성 낙관은 조금 위험하다.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아무것도 안 하면서 웃기만 하라는 말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낙관의 자세를 사랑한다. 우리의 감정은우리에게 일어난 사건 그 자체가 아닌, 그에 대해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Albert Ellis, Aaron Beck) 그리고 낙관의 자세는 평범한 순간들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주는 배경음악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_마르셀 프루스트



| Epilogue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아침 7시가 가장 바쁘다. 정신 없이 아기들에게 간밤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는지 파악하고 그날의 계획을 세우는 오전 시간을 정신 없이 보내고 나면  소중한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그 와중에 짧게라도 초록빛 피톤치드를 수혈받겠다며 꾸역꾸역 병원 앞에 심어진 튤립 사진이라도 찍어본다.


사소한 것 하나에 함께 웃고 박장대소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요즘이다. 더불어 여기에 감성 한 스푼 더하려면 에어팟 맥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자기합리화 지름신의 유혹을 열심히 뿌리치는 중 ...

그냥 지나가다 예뻐서 찍은 지하철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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