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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유 Nov 22. 2024

노년의 얼굴은 언제부터 준비해야 하나요?

나이 듦에 대해

#1

깊게 파인 눈덩이, 핼쑥한 볼, 아로새겨진 팔자주름.

출근길 마주친 어떤 이의 얼굴이다.


#2

곧이어 평생을 농사지으신 누군가가 떠오른다. 작고 약한 몸에, 볕에 붉게 그을리다 못해 까아맣게 탄 얼굴. 작은 몸이 굽은 허리로 더 작아보인다. 이 작은 몸으로 어떻게 몇 십년 세월을 쌀이며 사과며 자식들 먹일 작물들을 심고, 솎고, 거름 주고, 약치고, 베셨을까.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주기적으로 전화를 드리게 되는 이가 있다. 전화가 불가능한 상황만 아니라면 생각이 나자마자 전화기를 든다. 긴장된 마음으로 몇 개의 숫자 키패드를 누른다.



일년에 두어번 정도 떠올리는 숫자들이지만 25년 전에 처음 암기한 전화번호는 여전히 또렷하다.


짐짓 침착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껏 명랑하게 목소리를 냈다.


“여보세요”


“할머니! 저 은유예요!”


“어이? 은유?? 은유라??? 집에 왔나???”


할머니는 내가 전화할 때마다 서울에서 내려와 엄마 집에 왔는지 물으신다.


“아뇨 할머니~ 저 그냥 퇴근하고 집에 왔어요.”


“…아 그렇나 그래~ 내가 귀가 어둡어가 잘 안 들린다. ㅎㅎ”


그전에는 잘 들으셨는데… 속상했다.


“할머니~ 잘 안 들리세요? 저 엄마 집에 내려간 건 아니고, 회사 퇴근하고 그냥 제 집에 왔어요.”


“오이야 그래…”


여전히 잘 못 들으신 듯했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엄마랑은 통화했나?”


“오늘은 통화 못했는데 얼마 전에 했어요.”


내가 전화를 걸긴 했지만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실지 궁금해 잠시 기다려보았다.


할머니는 크게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전화기를 꼭 붙잡고 계셨다.



그 사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말일까 생각하며 서너번 삼킨 말을 마침내 꺼냈다.


“할머니, 제가 조만간 엄마랑 한번 갈게요”


“엄마랑 온다고? 오면은 좋지”


다시 이어진 침묵. 할머니는 이 상황을 어색해하고 계실까? 오랜만에 걸려온 손녀딸의 목소리가 반갑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낯설어 생각 중이실까?


“오야~ 그래 은유야. 전화해 줘서 고맙다. 감기 걸리면 애먹는다 조심하고…“


할머니는 때마다 꼭 내게, 전화해줘서,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네, 할머니.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할머니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오이야~ 잘하고, 열심히 해래이, 알았제?”


할머니 특유의 옅은, 아이 같은 웃음소리가 내 마음을 간질였다.


마지막 말씀은 평소 하시지 않았던 말씀인데, 마치 내 마음에 새겨지도록 천천히 하셔서 마음이 울컥, 목이 조금 메었다. 다 큰 손녀지만 할머니한텐 아직 어린애처럼 걱정이 되는걸까.


“그래~ 낸주 온나이. 알았제?”


“네 할머니, 들어가세요.”


“오이야~~~”


인사를 마쳤는데도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으니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액정 속 통화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마음 아프게.



점점 할머니와의 약속된 시간이 줄어드는 걸 느끼면서 마음은 더 아쉽고 내가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 할머니… 평생 일하시느라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으시고 혼자서 외로우실 텐데… 그 아픔을 제가 하나도 느끼지 못하고 이렇게 멀리 떨어져 전화만 드려 죄송하네요, 죄책감이 든다. 다시 한번, 찾아봬야지 다짐한다.


#3

겉모습으로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될 일이지만, 누군가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그의 세월이 눈앞으로 스쳐갔다.


동시에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얼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최근 입 주변이 긴장되어 있다. 뭔가에 집중할 때는 특히나 입 주변 근육이 경직되어 있고 미간은 찌푸려져 있다. 이게 굳어지면 못나질 것 같은데. 이제부터라도 얼굴의 긴장을 푸는 연습을 해야겠다.


젊은이의 외모에 대해선 보통 예쁘다, 잘생겼다로 평가하지만 나이 지긋한 이의 외모를 보고는 앞의 평가보다는 인상이 좋으시다, 우아하시다, 점잖으시다, 뭔가 있어보인다(?)하는 표현을 대신 하는 것 같다.


이제 나도 머지않아 예쁘다/잘생겼다를 넘어 나의 내면이 꽤나 얼굴에 드러날텐데, 그날을 기다리며 평소 미간 사이를 평평하게 하고(인상쓰지 않고),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 또한 실제로 그러해야 할 테니 내면수양도 계속해서 필요하겠다. 아름답게 늙어갈 준비를 조금씩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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