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나오는 카드가 있다
학생 때 타로점 보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타로카드가 내 마음을 눈치채고 쏘옥 뽑혀져 나와 타로마스터의 입을 통해 나의 미래를 예언해주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정확히 맞춰 신기한 날도 있었고 이도 저도 아닌 답변이 나와 실망스러운 날도 있었다.
당시엔 신의 계시라도 받는 것처럼 큰 마음을 먹고 타로를 보러 갔지만 요새는 조금 다르다.
별안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을 때, 내 마음을 만나기 위해 타로를 보러 간다.
2~3만원으로 30분~1시간 가량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툭 털어놓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건 참 좋은 서비스인 것 같다.
타로라는 매개를 통해 내담자와 상담자는 연결되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타로카드를 뽑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담자의 마음이 벨벳 테이블 위에 펼쳐진다.
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한 사람은 그 마음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풀이해 낸다.
상담자는 연속적인질문을 통해 내담자의 답변을 이끌어내고, 그 과정에서얻게 된 실마리를 타로카드에 반영해 더 깊은 속으로 들어가 빗장 내 꽁꽁 숨어있던 마음을 구출해내기도 한다.
이를 통해 내담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 도장 깨기하듯 타로점을 보러 다녔었다. 심리상담처럼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자와 대화하며 내 마음을 정리하고, 알아차리는 시간으로 가졌었다.
타로 카드는 종류가 다양하고 저마다 그림의 풍(風)이 다른데, 많이들 사용하는 아르카나 타로카드는 총 78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볼 때마다 자주 뽑히는 카드가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민이 많을 땐 거꾸로 매달린 사람(행맨)과 운명의 수레바퀴가 자주 나왔다.
동양풍의 카드로 볼 때에는 붓다 카드가 많이나왔는데(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다), 이건 생각과 영적 존재와 관련된 카드라고 했다.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안한 시기에는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카드들만 나오기도 해서, 다시금 타로의 위력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북촌에 갈 일이 있었는데 예전에 들렀던 타로집이 갑자기 떠올라 들러보고 싶었다.
몇년간 잊고 있었던 타로점이, 왜 뜬금없이 보고 싶었을까?
운의 흐름을 바꾸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요즘 정체되어 있던 한 생각에서 나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이대로 다음주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마음과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어떤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 같다.
요즘 나는 일상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나누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듣는 이의 성향에 따라 듣는 방법과 조언의 방향이 확연히 달라지므로 여러 의견을 구하는 편이었지만, 전체상황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 자체가 너무나 버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는 조언을 구하지 않아도 어떤 조언이 나를기다리고 있을지 미리 점쳐진다.
“다 그렇게 살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원래 다 그래.”
“어쩌겠어, 견디는 수밖에 없지.”
나이가 들면서, 사회에 머무른 시간이 길어지면서, 책임질 게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같은 대답을 내어놓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의 내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들이다. 들으면 힘만 더 빠지는 답변들이다. 그래서 좀처럼 내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 자문의 시간이 많아졌고, 평소의 관점에서 한발짝물러나 다른 시각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줄 제3의환경을 찾게 되었다. 그게 인물이든 공간이든.
그래서 마음이 답답할 때, 내 마음을 도무지 나조차 모르겠을 때, 여러 선택지 중 뭐가 최선일 지 모르겠을 때 한번씩 타로점이 생각나나 보다.
오늘은 타로카드를 통해 내 방향성이 맞다는 응원을 얻게 되었고, 덕분에 마음이 한결 든든하고 후련하다. 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이대로 쭉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