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내고향이 이렇게 재밌다니
두꺼운 가디건을 입어도 등허리가 시릴만치 쌀쌀한 날이라 우동 생각이 났다. 근처에 맛있는 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몇달을 못 가다 이번 참에 가볼까 싶었다. 퇴근 후 7분 거리의 우동집에 들어섰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실내였다. 안이 훤히 보이는 주방도 깨끗해 보였고, 부부로 보이는 사장님들도 인상이 참 말끔해 보이셔서 벌써부터 잘 찾아왔다 싶었다.
가격은 우동 7,000원.
요즘 물가를 생각해 보면 참한 가격이다. 음식을 기다리며 평일 내내 무겁게 쌓인 숨을 골랐다.
‘이번주 고생이 참 많았다. 올 것 같지 않던 금요일이 결국엔 왔어.’
얼마 되지 않아 우동과 김치, 단무지가 차려졌다. 생각했던 맛과는 좀 달랐지만 그래도 부드러운 면발이 괜찮았다. 우동을 삼키며 TV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6시 내고향’ 프로에서는 경북 영주 소개가 한창이었다. TV란 존재를 접하지 않은 게 10년은 다 되어가, 마치 TV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멀뚱멀뚱 TV를 구경했다.
어렸을 땐 학교를 다녀와 학원을 가기 전 저녁을 먹고 남는 시간에 틀어져 있는 티비를 그냥 봤었는데, 그 시간대에는 크게 재미있는 채널이 없어, 시간 때우기 용으로 봤던 그 프로그램이 아직도 방영되다니, 장수 프로그램이구만 그래, 하며 속으로 허허 웃었다.
처음에는 여자 리포터가 유려하면서도 편안한 말솜씨로 영주를 소개했고, 그다음에는 남자 리포터가 나와 해학적인 몸짓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런데 진행자들이 화려하게 소개하는 그 대상들보다, 진행을 하는 리포터들의 직업인으로서의 면모가 더 눈에 들어왔다.
‘진행을 부드럽게 참 잘하시네‘
'분위기를 잘 띄우시네‘
'동네 어르신이 저렇게 말씀하시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 대단하시네’
출연자들의 말과 몸짓, 행동을 찬찬히 뜯어보며 직업인으로서 그들을 관찰하는 내 자신도 새로웠다.
몇년 전 두 세시간짜리 사회를 맡을 기회가 몇번 있었는데, 그때 고민했던 내용들과 완벽을 위해 노력했던 나의 시간들이 떠오르며 처음보는 그들에게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마치 과거에 본 적 있는 영화나 책을,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예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이입되는 관점도 완전히 달라지고 그에 따라 느껴지는 게 다르듯이 2024년에 보는 6시 내고향은 2014년에 봤던 그것과 많이 달랐다.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문어를 다루는 식당이었는데, 사장님이 문어를 요리할 때 머리카락이 안 들어가게 하려고 민머리를 고수하시고, 눈썹조차 밀어버리셨다는 프로페셔널을 보여주셨다. 와우!
이 장면을 보면서도 ‘문어가 맛있겠다’라는 생각보다는(물론 조금 하긴했다) 재치있는 사장님의 말솜씨에 ‘어디서부터가 연출일까, 역시 방송은 다르다, 말씀을 맛깔스럽게 잘 하시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 의미가 잘 전달될까, 잘 닿을까 고민하는 게 최근 일상이 된 나의, 일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졌나 보다. 조금 으쓱하다. 7,000원치 우동을 실컷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