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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유 Nov 25. 2024

고양이 넥카라 적응기

지난 주말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고양이를 처음 맞이하고 나서 며칠 뒤, 이 어여쁜 아이를 꼭 닮은 새끼들을 보고싶단 생각에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말까 잠깐 생각했지만, 곧 고양이와 사람 모두를 위해서 중성화 수술이 필요하단 걸 알게 됐다.


필요성은 인지했다만 한편으로는 아쉬워 그 시기를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아이는 중성화 수술이 가능한 체중인 2kg를 훌쩍 넘었고, 개월수로도 발정기가 다가오고 있어 발정기가 오기 전에 수술을 해야 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한 지인은, 수술일 직전에 고양이의 발정기가 와버려 2주간 고양이와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발정기를 맞이한 고양이는 신체적 반응으로 괴롭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힘들다.




우리집 고양이는 제 운명을 알아차렸는지 수술 전날부터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평소보다 활동량도 줄고, 좀 더 새초롬해졌달까. 드디어 디데이. 토요일 아침 고양이를 가방에 메고 집을 나섰다. 몇번 경험해서인지 고양이를 가방 속으로 유도하여 지퍼를 채우는 사람도, 가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고양이도 꽤 자연스럽다.


침착하게 집을 나서서 고양이에게 평소처럼 말을 걸고, 잘하고 있다 다독이며 병원에 다달았다.   


병원 가는 길, 예전보다는 발걸음과 고양이 든 가방이 가볍게 느껴진다. 고양이도 낙엽 냄새를 맡았을까?


지난달 3차 백신 접종을 한터라, 항체가 잘 형성되어있는지 검사를 먼저 했고, 수술마취를 하는 김에 심장비대증 검사도 함께했다. 채혈을 하는 작은 앞발이 더 가냘프게 느껴졌다.


고양이는 사람처럼 한쪽 팔에 밴딩을 하고 수액실로 들어갔다. 수액을 맞은 뒤 수술을 20분 가량 할거라고 했고, 수술 후에도 수액을 맞으며 마취에서 깨어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하여 나는 2시간 가량 근처에서 기다렸다.


낯선 환경에 귀가 앞으로 쫑긋, 눈이 동글. 병원에 오면 이상하게 얼굴과 몸이 더 작아지는 것 같다.


병원으로 돌아오니 고양이는 가방 안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선생님들은 고양이가 참 순하다 하셨다. 고양이는 유연하여 온몸을 핥을 수 있기 때문에 수술 부위를 핥지 못하도록 목에 넥카라를 씌운다.


이 넥카라를 유독 싫어하는 고양이도 있다 하여 환묘복도 미리 준비해 갔다. 병원에서는 내가 준비해간 환묘복까지 잘 입혀주었다. 가장 작은 S사이즈였는데 목, 팔 둘레는 컸고 몸의 길이는 짧아 몸에 잘 맞지는 않았다.



집에 데려와서 바닥에 내려놓으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몸이 양옆으로 자꾸 미끄러졌다. 마취 때문이란 걸 알았지만 너무 안돼보였었다.


어디 부딪히기라고 할까봐 뒤따라 가며 노심초사 지켜봤다. 아이는 멈추지 않고 느릿느릿 비틀대며 어딘가로 계속 향했다. 어딜 가는거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 왜 가지? 위험한 상황이라 느껴서 화장실에 숨으려고 하는건가? (그럼 상황이 좀 심각해지는데...) 불안했다. 고양이는 화장실에 도착하긴 했는데 넥카라 때문에 중심을 못잡고 앞으로 고꾸라져서 넥카라에 모래가 다 들어갔다.


아이구 이를 어째.


우선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조금 기다려줬다. 잠시 가만히 있던 아이가 이윽고 나오려고 했다. 고개를 잘 들지 못해 이때는 내가 꺼내줬다. 있던 자리를 자세히 보니 소변의 흔적이 있었다. 마취가 덜 깨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화장실에 와 소변보는 고양이라니. 기특하면서 짠하고, 짠하면서도 고마웠다.


영특해 너란 녀석.


얼굴과 넥카라의 모래를 털어주고 펫티슈로 닦아줬다. 화장실에서 나와서도 여전히 비틀비틀이다. 넘어진 자리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잠잘 공간을 이동하며 여기에서 잠깐 졸았다, 저기에서 잠깐 졸았다 한다.


마침내 침실로 들어와 여느 때처럼 침대 위로 점프를 하려 했지만 침대에 닿지도 못했다. 아이를 조심스레 침대에 올려주니 눈꺼풀을 늘어뜨린다. 그리곤 종일 내리 잤다.


(안쓰러운) 침대위로 끙차
끄응


이튿날 아침, 여전히 비틀댔지만 그래도 걸음걸이에 힘이 생겼다. 공놀이도 조금 한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가면 넥카라에 뭔가가 자꾸 부딪히니 뒤로 걷는 스킬도 터득했다. 참 적응이 빠르고, 똑똑한 친구다.


며칠째 지켜보니 아이는 손이 닿지 않는 귀와 턱이 간지러운지 연신 넥카라를 긁어댔다. 얼마나 간지러울까, 하루에 몇시간씩 그루밍을 해야하는 아이인데 넥카라 때문에 하지를 못하니.


그래서 내 손으로 긁어줬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제 발로도 (원래는 닿았어야 할 자리에 대신 위치한) 넥카라를 계속 긁었다. 고양이 발 속도에 맞춰 계속 긁어줬다. 시원한지 눈을 감으며 갸르르 한다. 제 발이 긁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보다 아이는 귀를 자주 긁는 모양이다. 넥카라를 긁는 소리가 꽤 자주 난다. 넥카라를 최소 일주일 착용하랬는데 일주일이 언제 가려나.


정말 느리게 흘렀던 것 같다.


넥카라 빼고싶어 / 뒷발 팡팡팡. 이 때 내 팔을 부여잡고 입으로 살짝 무는데 넥카라 덕분에 내 팔은 안전했다. 의외의 기능.


그러다 드디어 월요일이 왔다. 넥카라를 빼줄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얼마나 시원해할까.


넥카라 착용 후 2~3일째가 참 시간이 안 갔던 것 같다. 애는 중심도 못 잡고 자꾸 뒤로 걷지, 얼굴은 간지러워서 하루에도 몇십번 긁지, 넥카라 긁는 탁탁탁 소리에 새벽 몇번을 깼는가.


넥카라로 조이는 목은 또 얼마나 간지러울지, 못 참은 애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 행동을 하면 어떨지 마음을 많이 졸였다. 그러다 4~6일차가 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조금만 참자, 지켜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초반이 가장 힘겹다.


새로운 일이고, 그게 또 어려운 일이고, 내가 평소에 해왔던 방법과 달라 걱정도 되고 이게 제대로 안되면 어쩌지 하는 많은 고민, 걱정, 두려움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하루종일 이 생각만 하기 때문에 항상 그 생각 뿐이고, 그 걱정 뿐이다. 이 시간이 나를 지배해버린 것 같아, 내가 이 불행에 잡아먹힐까 더 두려워진다. 하루가 일년 같을 때도 있다.


중간지점 쯤 와도 여전히 두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반을 했으니 반 정도 남았다는-희망이라면 희망이 생기지만- 지나온 반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남은 반을 또 어찌 지낼까 싶다.


그러다 보면 75% 정도가 지나간다. 이 정도 되면 내가 참 대견하다. 25%가 남긴 했지만, 좀 까먹고 있으면 지나가지 않을까, 한다.


결말은 누구나 알듯이 두려움의 끝. 약속된 시간이 왔다. 이 시간을 지나온 나에게는, 꼭 안아주고, 할 수 있는 모든 친절한 말을 해주자.


이 두려움 속에서 단 하나 우리의 구원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끝이 있어, 꼭 그날이 올 거라는 사실이 있어 오늘의 우리를 견디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소중한 세월을 견디기만 하는 건 너무 아까우니, 이 견딤의 끝에서 나는 어떤 시작을 새로이 하고 싶은지 틈틈이 생각하고, 때가 왔을때 행해야 한다.


이 시간은 때때로, 허락된 잠깐의 달콤한 순간이기도 하다. 숨막히고 괴로운 하루 중에서도 이 순간을 잠시나마 꼭, 꼭 누리도록 하자.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


  

여전히 고양이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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