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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고양이 합사 7일차

합사 일기

by 고은유

1일차 일요일, 둘째 가을이가 왔다. 첫째 그림이를 침실에 넣어두고 둘째 가을이를 서재 방으로 옮겼다.

둘은 마주치지 않았고, 다행히 그림이는 새로 사준 장난감으로 정신없이 노느라 한두시간은 거뜬했다.


가을이는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이곳저곳을 뛰노며 상황을 파악하는 듯 했고, 내가 중간중간 한번씩 그림이를 보러 가있을 때면 작은 목소리로 울어댔다. 그러다 내가 방에 돌아와 쓰다듬으면 내 무릎에 올라와 야무지게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2일차 월요일,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지라고 서로의 체취를 묻힌 양말을 서로에게 줬다. 방묘문을 설치해놓았지만 서로를 마주보게 하는건 망설여졌다. 그래서 최대한 이방 저방 조용히 옮겨다니며 아이들을 따로 돌봤다. 비좁은 문 사이로 먹이그릇, 물그릇을 옮기고 화장실도 청소해주고 하려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곧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 또한 이 생활에 적응하고자 했다.


고양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친구들에게 보내줬다. 그 중 합사 경험이 있는 친구는 방묘문이 있으니 문을 열어둔 채로 서로의 모습에 익숙해지도록 내버려둬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되나? 아직 이르지 않나?' 조금 고민하다 '그래, 아이들이 꽤 잘지내는 듯 하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싶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곤 바로 후회했다.



3일~5일차 화요일~목요일, 가을이의 존재를 제 눈으로 발견한 이후 그림이의 동공은 가을이 방 근처로 갈때마다 커져있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해있었다. 그에 반해 가을이는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에서 뛰어다니며 놀다가 그림이 쪽으로 거침없이 달려오기도 했다.


아침에 10분, 점심에 10분, 저녁에 10분 정도 방묘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에게 츄르를 주며 어르고 달랬다. 그림이는 다행히 츄르에 반응했지만 가을이와 눈이 마주치면 좋아하는 츄르를 먹다가도 다시 까매진 눈으로 가을이 쪽을 바라보았다.


방묘문을 사이에 두고 둘은 서로 코를 맞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코를 맞대는 모습은 언뜻 보면 사이가 좋아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괜찮은가? 생각하면 이내 그림이의 콧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의 그것만큼이나 소리가 정말 크다.)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 최대한 깊게 냄새를 마시고 뱉는 듯 했다. 그러다 그 소리가 하악하는 소리와 비슷해지려고 하면 방문을 닫았다. (나도...하아...)


둘째는 눈치없이 자꾸만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첫째는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6일차 금요일, 그림이는 이제 방묘문 앞에서 몸을 늘어뜨려 쉬기도 하고, 긴장이 조금은 풀린 듯 했다.


그래서 나 또한 긴장이 누그러져 옆방에 앉아 있었다. 그때, 무언가 드드득 하는 소리가 나 아이들 쪽을 바라보니, 가을이가 방묘문 사이에서 점프를 하고 있었다. 방묘문 틈이 커서 수건으로 막아놨었는데 그 수건을 빼서 밖으로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 바로 앞에는 그림이가 있었는데 이를 어쩌나!


너무 순식간이라 손쓸 겨를 없이 가을이는 이미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림이는 조금 당황한 듯 했는데, 가을이가 나오자 둘은 서로 코를 맞대며 다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럴수가!


둘이 크게 싸우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평화로웠다. 6일간 서로 냄새를 맡고, 탐색을 하고 지켜봤기 때문일까.


서로 흥흥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다가 하나가 뛰기 시작하면 다른 하나도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의 꼬리잡기가 시작됐다. 혹시나 무슨일이 있을까 지켜봤지만 뛰어다니기만 하는 아이들은 서로를 해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잘 생각도 하나도 없어보여 그날은 분리수면으로 잠을 청했다.


방묘문을 언제 개방해야할지 생각중이었는데, 가을이가 아주 화끈하게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너 정말 대단한 아이구나.


서서히 가까워지는 고양이들


7일차 토요일 아침, 그림이는 거실에 있었지만 통통 뛰어다니는 소리가 나야 정상인 가을이는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을아~ 불러도 보고 구석구석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작아서 못찾는거 아닌가 불안감이 밀려올때쯤 저 멀리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려보니 저 멀리 베란다 밖에서 가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을아, 거기에 어떻게 들어갔어?


분명 베란다 문을 닫아두고 잤는데 말이다. 여전히 미스테리다. 베란다에서 동그래진 두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가을이를 보자,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체온이 걱정돼 뛰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체온은 또 따뜻했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가을이 너 혹시 순간이동 할 수 있니? 아님 벽을 통과할 수 있다든가...'


그 이후로도 둘은 서로 냄새를 맡기도 하고 좀 더 친해졌나 싶으면 서로에게 냥냥펀치를 날리기도 하고 꼬리를 물다가 도망가고 쫓아가고 그러다 내 옆에 와서 그루밍하다가 동시에 잠이든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이 난다.


아직 갈길이 남았긴 하지만, 그래도 합사 첫날을 생각하면 일취월장 했다.


가을이가 온 뒤 그림이의 그르릉 소리를 들을 수 없었는데 오늘 낮에 다시 들을 수 있었다.

휴우, 첫번째 시험은 어찌저찌 통과한 듯 하다.


아기였던 그림이가 쑥쑥 컸듯이 둘의 관계도 쑥쑥 발전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왕이면 서로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입양 기념 가을이 독사진


훈훈한 투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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