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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유 Oct 08. 2024

나만 없나요 고양이 (feat. 우연)

자유로워지기, 수용

그죠? 나만 없죠. 다 있는데 나만 없어요. 어떻게 다들 있지? 누구는 다섯이나 있는데 왜 나는 하나도 없지?

나도 고양이 있고 싶어!


이 마음이 갑자기 들어왔다. 그 순간 아, 조만간 고양이가 생기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강렬한 느낌이 드는 건 내 인생에서 드문 일인데, 이런 예감은 대부분 현실이 되어 내게 큰 영향을 미치곤 했다.


그전에 몇 가지 해결거리가 있었다.


하나의 생명을 내가 책임질 수 있을까?

내 옷들을 해치면 어떡하지?

갑자기 알러지가 생기면 어떡하지?

으악 다 어떡하지???


생각할수록 안 되는 이유들만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고양이가 필요했다. 그게 내 운명이었다.


운명을 직시한 지 일주일이 채 안돼 친구에게서 고양이입양 제안을 받았다. 시골에 사는 친구였는데 길고양이가 며칠째 집안에 들어와 지내고 있다고 했다.


사진을 받았는데 아기 고양이었다. 눈빛이 조금 매서웠다. 그래도 새끼 고양이니까 크면서 안 무서워질 거야(?) 하며 나를 다독였다.


그래도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고, 십수 년을 함께 해야 하니 신중해야 할 것 같아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며칠 내내 고민했다. 마침내 이름도 지었다. 친구에게 알려줘야 했다 나 결정했다고. 전화를 걸었다.


“고양이 잘 있어?”


“안 좋은 소식이 있어”


설마… 설마… 설마… 아닐 거야. 나 이제 마음먹었는데.이름까지 다 지었는데. 예방 접종할 집 앞 병원까지 다 정해놨는데 이럴 순 없어. (고양이는 문틈으로 집을 나갔다.) 얇은 사진 한 장으로 만났을 뿐인데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허탈한 하늘


그래도 이 상실감만 붙잡고 있으면 뭐 할까 싶어 인연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며 털어냈다.

고양이에 대한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래, 또 다른 인연이 올 거야.


정말 왔다.

회사가 너무 답답해 휴가를 쓰고 일찍 퇴근한 날이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향했다. 그 앞에, 카페에 올 때마다 눈여겨본, 언젠간 한번 가봐야지 하던 화실이 있었는데 불이 켜져 있었다.


와 평일에 오니 화실구경도 다하네. 그런데 그 안에 뭔가 작은 물체가 빠르게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뭐지? 자세히 보니 아기 고양이가 냥냥하게 뛰어놀고 있는 게 아닌가? 헙… 예쁘다… 부럽다… 나도 고양이… 그렇게 몇 초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뭐에 홀린 듯 화실 안으로 들어갔다. 원장님으로 보이는 분께 중얼거렸다.


“애기… 너무 예뻐요… 부러워요…(찐으로 정말 너무 부러웠다.)” 그러자 이어지는 말.


“데려가실래요?”


머리가 띵했다.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정말요? 데려가요? 제가요?


알고 보니 화실 앞 실외기에서 2주간 나오지 않던 아이였는데, 그날 처음으로 화실 안으로 들어온 거였다. 그때 마침 내가 지나갔고, 선생님은 정이 든 이 아이를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 중이던 참이었다.


처음 만난 날 너는 신나게 놀고 있었지


이런 우연이.

그날 나는 회사에서 머리 아픈 일이 있어 우연히 휴가를 썼고, 걸어서 30여분 거리를 그 여름에 꾸역꾸역 걸어 우연히 그 카페에 갔고, 고양이는 하필 그날 우연히 화실에 들어갔고, 난 또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주위를 살피다 고양이를 발견했다.


네 가지 우연이 닿아 우리는 서로에게 이르렀다.

때로는 간절한 마음과 주의 깊은 관찰이 겹쳐 인연이 생기기도 하나보다. 그러니 간절히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자.   


이 우연의 순간들이 칙칙한 우리의 삶을 때때로 눈이 부시도록 밝혀주니까.

아기 고양이, 지금은 어린이 정도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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