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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Nov 09. 2020

나의 인생, 너의 견생과 묘생...(1)

부하에서 친구로-나는 자라고, 너는 늙는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우리 애기 보세요.. 이쁘죠...~!!!


 문이 열리면서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가만있자... 애가 셋, 엄마, 아빠...

 병원을 하는 입장에서는 저렇게 많은 보호자들이 오면 정신이 없다.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세 아이들은 미친 듯이 병원을 뛰어다닌다. 

"얘들아, 여긴 아픈 동물이 있는 곳이라서, 조용히 해줄래???"

가볍게 무시하고 또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로 한숨이 내쉬어진다...

 아이고... 참 귀여운 아이들.... 참 철없는 아빠.... 참 불쌍한 엄마...



 동물병원을 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사람과, 그들이 키우는 반려동물들을 만난다. 

 영화보다 더 달콤한 사랑도, 눈물겹게 가슴 아픈 인연도,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흐뭇한 관계도...

모두가 알다시피, 반려동물과 우리의 수명은 다르다. 그렇기에 한 발짝 물러서서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 모든 인연들의 만남과 헤어짐에도 어느 정도 규칙성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시작과 끝은 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인생에서 이 반려동물이 어떠한 시작과 끝을 맺는지는 멀리 떨어져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매력적인 직업일지도 모른다. 



 아주 어릴 때,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 아빠가 키우던 개와 고양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로 보통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반려동물은 6살에서 초, 중학생이 될 때 즈음 엄마를 졸라서 키우는 바로 그 동물이 될 것이다. 참 많은 집에서 발생하는 사건중 하나가,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와 아빠, 그리고 반대하는 엄마 간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심리 싸움이다. 

 끝까지 엄마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무턱대고 분양받아와서 쫓겨나는 아빠,  단식 투쟁 끝에 엄마의 허락을 받는 아이들, 그리고 길에서 애기 고양이를 주워와서 엄마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울먹이는 아이....

 첫 접종을 하러 올 때면, 보통 온 가족이 같이 온다. 아빠, 엄마, 아이들... 싱글벙글 웃으며 뭐가 좋은지 행복한 아이들과, 이뻐 죽겠는 아빠, 그리고 한숨을 내쉬면서 한탄하는 엄마...  하지만 2차, 3차 접종이  진행될수록, 접종하러 오는 사람의 수는 줄고, 결국은 엄마 혼자 온다.  그렇다. 처음에는 똥도 내가 치우겠다, 밥도 내가 주겠다. 훈련도 내가 하겠다, 굳은 약속을 했던 아이들과 아빠는 게임하느라, 술 먹느라, 점차 소홀해진다. 결국 이 모든건 엄마의 몫이다. 안 그래도 말 안 듣는 자식들, 남편 키우느라 힘든 엄마에겐, 갑자기 원치도 않게 찾아온 이 존재가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짐이 나중에는 놀라울 만큼 큰 위안이 된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내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친구이자, 동생, 그리고 아무도 안 들어주는 내 말만 듣고 나에게 충성하는 소중한 부하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친구와 놀러 다니고, 공부하고, 진학을 하면서 나는 바빠질 수밖에 없고, 나의 부하는 늙어갈 수밖에 없다. 


원장님, 우리 애기 좀 살려주세요.....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울먹이며 말씀하신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하지만 이 얘는 이미 나이가 15살이 넘은지라.. 질병 때문이라기보다는 진짜 수명이 다하는 겁니다. 길어봤자 3~4일이면 떠날 것 같아요..."

"그러면 원장님.. 제발, 이번 주 일요일까지만 살아있게 해 주세요..."

동물병원 하면서 정말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다.

"글쎄, 그건 장담 못하겠는데.. 왜요"


우리 딸이 이 얘 언닌데... 그 애가 서울에서 일을 해서 일요일에만 올 수 있어요. 그 애가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철부지 시절, 본인이 조르고 졸라서 강제로 맺은 첫 인연.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엄마, 아빠와의 만남과는 반대로, 내 의지에 의해 처음 가진 내 동생, 그리고 내 부하.

 그 작았던 내 부하가 수명이 다해갈 때쯤이 되면, 그 철부지였던 여자애들은 직장을 다니게 돼서 서울에 있거나, 남자아이들은 군대에 있다. 또 많은 수는 그곳에서 외롭다고 또 새로운 반려동물을 키우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나이에 다시 키우는 반려동물은 더 이상 내 친구이거나 부하가 될 순 없다. 그때는 또 다른 이름, 내 새끼, 그리고 내 자식이라고 불리게 될 뿐.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소중한 내 친구.. 내가 선택한 첫 번째 나의 인연... 


 그리고 형아와 언니가 진짜 보고 싶었던 것일까... 많은 노령견, 노령묘들이 정말 예상했던 날을 넘기고, 주말까지, 혹은 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품에서 떠나곤 한다. 생을 마감할 때는 그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고 한다.  어쩌면 그 순간은 그 아이들의 마지막엔, 작디작은 자기를 안고 있던,  작았던 어린이의 품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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