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영화에서는 무엇을 고를지 모르는 인생에 대한 멋진 말이지만, 동물병원을 할 때는 조금 다르게 와닿을 때가 있다. 꼬물 꼬물이들이 눈을 막 떠서 고른 그 주인 (물론 꼬물이가 고른 건 아니지만). 아가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는 결국에 열어봐야 알 수 있단다.
너무나 추워서 개도 고양이도 사람도, 개미새끼 하나조차 병원을 들어오지 않던 겨울의 어느 날. 하품을 쩍 하면서 휴대폰이나 보고 있다가 반가운 문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앉아버렸다.
"어서 오~~~ 아.... 어...."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께서 다 헤어진 군복에 전투화를 신고, 이상야릇한 얇은 점퍼를 세 개 정도 껴입은 채로, 문을 열고 들어오고 계셨다. 며칠을 안 씻으셨는지 겨울인데도 몸에서 쉰 냄새가 진동을 하고, 막 폐지를 줍고 오셨는지 몇몇 박스를 소중히 들고는 천천히 데스크로 다가오셨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지 다리도 심하게 절고 계셨다.
'아씨... 개시도 안 했는데 첫 손님부터....'
보나 마나 어디 배가 고프니 돈 좀 달라고 하거나, 일주일 쓰면 뜯어질 고무장갑 하나 주면서 5천 원에 사라고 할게 뻔한 행색이었다.
"어르신.. 아침부터 이래 오시면 아직 개시도 못했는데~~~ 어??"
슬쩍 신경질을 부리려는 나에게 어르신은 씽긋 웃으시면서 작은 믹스견을 한 마리 꺼내 내밀었다. 분명 두 손에는 박스 몇 개만 있었는데, 마술처럼 호주머니에서 개를 꺼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 뭐 주사 맞아야 한다 카던디...."
네네 고객님. 예방접종하셔야죠~!!! 급 친절 모드로 바꾼 나는 서둘러 진료를 시작했다. 접종은 1차부터 6 차까지 있고, 구충도 해야 하고, 꼭 사료 먹이시고~~ 불라 블라...
기계처럼 진료를 보면서도 걱정부터 앞섰다. 과연 접종비를 받을 수 있을까. 접종비 한 5천 원 할 줄 알고 오셨는데, 몇만 원 나왔다고 소리 지르고 가신 어르신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돈 없다고 화를 내시면 좀 깎아드려야겠다 싶어서 진료 말미에 슬쩍 여쭤봤다.
"어르신. 접종비가 그래도 오시면 한 4만 원씩은 나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좀 안 부담스러우세요? 부담스러우시면 제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깔끔하게 말을 자르며 카리스마 있게 대답하시는 어르신
"괜 자나~~~ 안 아프려면 맞아야재..."
괜히 어르신 첫인상을 보고 오해해서 찔린 마음에, 괜찮다는 어르신께 좀 할인도 해드리고, 구충도 서비스. 사료 샘플도 왕창 챙겨드렸다. 그러면서도 내심 아마 다시 오시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꽁순이 왔습니더~~~"
정확하게 2주 후. 날짜까지도 칼같이 맞춰 어르신이 등장하셨다. 혹시나 람보르기니를 끌고 너무 심심해서 서민 체험하시는 회장님인가 싶어 창밖에 차까지 확인해봤는데, 분명히 박스가 쌓인 구루마를 끌고 오셨다.
이 어르신은 결국 6차까지 접종을 마친 후, 병 걸리면 안 된다고 암컷 중성화 수술까지 하고, 비싸면 좀 싼 거 쓰셔도 된다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시면서 제일 비싼 사상충을 하러 병원에 꼬박꼬박 내원하셨다. 애가 좀 긁는다 싶으니 아토피 전용 사료도 먹이시고, 좋다는 영양제 먹이시면서 윤기 좌르르 흐르는 시고르 자부종인 꽁순이를 정성껏 잘 키우셨다. 3년째였나 어르신이 이사 가시면서 더 이상 꽁순이를 보진 못했지만, 단칸방에서 본인은 컵라면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사시던 어르신이 꽁순이에게 쏟는 그 사랑은 정말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꽁순이가 처음 왔던 날과 비슷한 강추위가 몰아쳤던 어느 겨울.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한쌍의 커플이 정말 작디작은 말티푸를 한 마리 분양받아왔다. 접종을 하고, 상담을 하고... 릴리라고 이름 지어진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넘쳐흘러 진료중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유튜브를 얼마나 보셨는지 모르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았다. 길고도 길었던 초진이 끝나고. 계산하고 나가시는 보호자분들의 휴대폰 배경도 릴리. 릴스타그램도 시작했다면서 우리 병원 사진도 열심히 찍어가시고는 좋은 병원이라고 후기도 올려주셨다. 그날은 릴리에게도, 보호자들에게도, 우리 병원에게도 너무나 완벽한 하루였다.
저기 죄송한데, 문자 좀 안 오게 해 주실래요?
일 년 후 걸려온 전화.
반년만에 연락이 온 릴리네였다.
방문 2주 후 바로 다음 접종 때부터 보호자분이 많이 달라지셨다. 여자 보호자만 혼자 내원을 하고, 궁금한 것과 함께 관심도 많이 사라져 보였다. 빗질도 안 해주고 관리가 안돼 털에 오물이 잔뜩 끼여서 안 좋은 냄새를 풍기고, 2주일간 몸무게가 오히려 줄어있었다.
"릴리가 잘 안 먹나요??"
"아니요. 먹으면 똥을 너무 많이 싸서 조금만 줘요"
병원에서 사료 샘플을 줘보니 정말 미친 듯이 흡입하는 릴리였다. 아직은 관심이 필요할 때다. 밥도 조금 더 주고 관리를 잘해주시기를 당부하고 보내드렸다.
그 뒤로 릴리가 진료를 받으러 온 적은 없었다. 두 번인가 발톱 깎고, 털을 좀 다듬으로 왔을 뿐. 올 때마다 너무 상태가 안 좋아서 테크니션들이 수군수군 거리고는 그냥 말없이 정리해드리곤 했다.
사실 우리가 그들의 인생에 까지 간섭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동물병원을 하면서 정말 많이 보는 안타까운 일들이다. 남녀가 사랑을 하고. 개를 귀여워하는 여자를 위해 남자가 선물로 분양해주고. 둘이 알콩달콩 잘 키우다가 헤어지고. 남은 것은 커진 개의 몸뚱이와 차갑게 식어버린 관심. 그리고 문자 좀 보내지 말라는 전화 한 통을 끝으로 더 이상 소식은 들을 수 없다.
강아지, 고양이를 분양받는 것은 우리에게는 몇 번이고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선택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운동화를 살까 구두를 살까 하다가 슬리퍼를 사버리는 정도의 별것 아닌 쇼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동물에게는 한 번의 일생에서 단 한번 주어지는 중요한 선택이자 유일한 기회인것이다. 나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갈려버린 두 아이의 일생이 새삼 슬프게 다가왔다. 병원을 내원해주시는 손님들께, 그리고 이 글을 보는 여러 주인들께 한번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