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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있다는 것

스토리#42

by 차나처

멀리서 경광등이 번쩍 거리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딱 봐도 우리 요양원 앞입니다.

발걸음을 서둘러 뛰다시피 하여 출근했습니다.

"뭔 일이야?" 야간 근무한 요양보호사에게 물었더니 "모르겠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런 일이 생겼어요"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도 떨리고 맞잡은 두 손도 떨고 있었습니다.


라일락꽃님은 당신이 두 발로 걸어다니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다.

라일락꽃님은 다른 어르신들이 워커에 의지해 걷거나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아유 제 발로 못 걸어? 다들 병신이네"

혀를 쯧쯧 차며 비아냥 거리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그 소리를 들으신 다른 어르신이 "너도 멀지 않았어 언제까지 말짱할 줄 알아?"

"꼴값 떨지 마" 하시고 화를 내시니 다툼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습니다.


야간근무자가 어르신들 아침 식사 준비할 때는 너무도 바쁩니다.

근무자수도 적은 데다 어르신들이 일어나셔서 세면장이나 화장실 이용이 가장 많은 시간이기에 눈, 손, 발이 단 1초도 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이쪽 저쪽으로 눈을 돌려 어르신들의 움직임을 살피지만 그 움직임이 눈 속에 다 담기지 않습니다.


아침 식사 준비가 한창일 때 라일락꽃님이 요양보호사가 가져다 드려야 할 식판을 당신이 들고 이동하시다 다리가 꼬이면서 뒤로 넘어지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못 일어나셔서 원장님과 간호사에게 연락하고 119 불러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라일락꽃님 상태를 보니 손목이 크게 부어있고 몸은 건들지 못하게 하시며 심한 통증을 호소하십니다.

크게 다치시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아침 인계시간에 우리들은 모두 죄인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습니다.

원장님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 고생하시는 거 다 알아요"

"하지만 일에도 순서가 있어요 어르신들 안전 위주로 하셔야 해요"

"특히 움직이는 어르신들은 어떤 안전 조치를 하고 다른 일을 하셔야 해요"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잘해주시고 애쓰시는 거 아는데 조금 더 노력해 주세요"


원장님이 떠나고 우리들은 서로 한숨만 쉬며 할 말을 잃고 각자의 일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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